한국 보수, 트럼프 압승에서 뭘 배워야 하나?

2024-11-07

세계적 진보 사조 휩쓸려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

58% 정권 심판론이 민주주의 위협론 잠재워

초박빙 여론조사들이 놓친 건 침묵한 ‘샤이 트럼프’ 표

지나친 소수-약자 숭배, 상식-통념 깬 PC 주의 ‘반진보’ 역풍

트럼프의 예상 밖 압승은 한국 보수우파 진영에 경종과 희망을 동시에 던져 주고 있다.

경종은 거칠게 말하면, 세계적인 진보 사조에 휩쓸려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재선으로 지나친 소수-약자 숭배(존중을 넘어 우러러 떠받는 것)와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소수자 비보호 언행 삼가기) 주의 풍조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노약체 후보 바이든이 사퇴하고 해리스가 대리 후보로 무혈 입성했을 때, 그녀의 대통령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堂上, 조선시대 정3품 이상의 벼슬) 같았다. 한국에서도 70% 이상이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해리스를 지지했다. 트럼프는 성범죄 등 갖가지 악행에 의회 난입 선동 등 ‘민주주의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반감을 많이 샀다.

그런데도 미국 내 여론은 팽팽했다. 선거 당일까지 50-50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우리가 다 놀란 대로다. 왜 이런 승부가 되었나?

결과적으로 ‘초박빙’ 여론조사들과 분석-예측 모델 이용 학자는 틀렸고, 육감으로 찍은 전문가들은 옳았다. 여론조사는 ‘샤이 트럼프’ 표를 크게 보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알고 있었고, 이들은 또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호감-비호감도(Offend, 기분을 상하게 하는 감정)보다는 후보들의 능력(Affect, 자기 이해관계에 미칠 영향)을 보고 투표한다는 것을 중시했다.

이번에 망신을 산 족집게들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지난 40년간 단 한 번 틀렸다는 앨런 릭트먼 교수다. 그는 이번 오답으로 44년 동안 2번 틀리게 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일주일 전에 트럼프 역전을 보도했다가 선거일 직전 황급히 해리스로 답을 고치는 바람에(그것도 큰 비율 차로) 망했다.

반면, 미국 대선 여론조사 전문가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선거 10여일 전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나의 직감(My gut)은 트럼프 승리를 말한다”라고 과감한 선언을 했다. 그의 ‘샤이 트럼프’ 표 존재 지적이 가장 돋보였다.

또 강성 진보좌파 매체 뉴욕타임스 내 보수 논객 브렛 스티븐즈(Bret Stephens)는 “나의 스파이더맨 육감(Spidey Sense)은 트럼프가 이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했다. ‘미국이 옳은 길로 가고 있다’라고 응답한 국민이 28%에 불과한 여론조사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72%는 정권 심판론 또는 무응답/모름이었다.

샤이(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만, 눈치 때문에 응답 유보 또는 거짓으로 상대 후보 지지 응답) 유권자들은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금물이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보수 후보가 그 표를 많이 갖는 게 세계적인 현상이다. 진보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크고 정의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대선은 샤이 트럼프 표가 극단적으로 축소 평가되었다. 이해가 안 될 정도다. 해리스는 선(善)이고 트럼프는 악(惡)이라는 공식이 미국 전역을 압도한 가운데 숨어서 침묵하고 있던 트럼프 지지자들을 간과한 건 여론조사 기관들이나 언론, 정당, 후보들의 크나큰 패착이다.

트럼프의 또 하나 결정적 승인은 경제, 이민, 전쟁 등 항목에서 해리스를 땅 짚고 헤엄치듯 따돌린 것이다. 능력과 소신이 허울 좋은 진보-평등-개방을 이긴 셈이다. 이것이 바이든-해리스 진보좌파 정권에 대한 심판론(출구조사에서 58%)을 형성, ‘경제 대통령’ 트럼프를 백악관에 복귀시켰다.

트럼프는 경제 능력과 반 글로벌리즘 노선으로 미국 시골 주들의(주로 경합주나 공화당 우세 중서부 및 남부 주) 저학력 청중노년층 백인들을 사로잡았다. 흑인-히스패닉 등 유색인들의 공화당 지지도 종래 5% 선에서 15%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반 이민주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 일자리와 더 나은 삶을 위해 트럼프를 선택했다.

해리스는 대도시 고학력 진보 성향 유권자들과 낙태 이슈에 민감한 여성 표에서 우위를 보이는 데 그쳤다. 이로써 세계적 유행을 타고 있던 성 소수자 우대 등 진보좌파들 목소리가 적어도 미국에서는 잠잠해지게 됐다.

미국에서 진보의 거침없던 활보에 제동이 걸리면 세계 다른 나라들도 따라가게 돼 있다. 트럼프의 승리는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 시대에 이런 거대한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별 문제의식 없이 가져왔던 상식-통념들이 깨지고, 추행이나 희롱으로 죄악시되고 있는 지나친 PC 주의도 퇴조의 막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소수와 약자 존중이 우대되고 숭배가 되는 건 정상이 아니다.

트럼프의 압승은 일종의 탈(脫)진보이며 세계적 사조가 되고 있던 진보 득세에 대한 역풍이다. 한국 보수의 희망이다.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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