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걸리던 진료 며칠 만에 끝, AI 의료혁명 현실이 된다

2024-09-13

이준기의 빅데이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과도한 기대, 환멸, 점진적 이해, 그리고 안정적 사용의 사이클을 반복한다. 최근 엔비디아의 주가 하락과 함께 인공지능(AI) 버블론이 신문 기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는 AI가 과도한 기대의 사이클에 접어들었다는 전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산업별 AI 적용을 연구하면서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다. 향후 10년 내 의료시스템에서 AI는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대형 병원들의 운명은 AI 활용 능력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의료 분야, 80년대부터 AI 적용 최전선

항상 의료 분야는 AI 적용의 최전선이었다. 멀리 1980년대 중반 규칙 기반 인공지능이 유행하였을 때도 가장 유명한 AI 시스템 중의 하나는 ‘마이신’이라는 의료 진단 시스템이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IBM의 온톨로지 기반 ‘왓슨’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병원에서 도입되어 인기를 얻었다. 현재는 데이터 기반의 기계학습이 의료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많은 논문과 적용 사례가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 루닛과 뷰노의 의료 영상 판독 성과는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들은 주로 특정 의료 분야의 진단에 국한되어 있어, 의료 시스템 전체나 대형병원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챗GPT 3.5 이후 등장한 범용 AI(AGI)는 의료 시스템에 대한 AI의 영향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한 대학병원 교수와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점이 언급되었다. 단순히 영상 판독 AI를 이용하여 진단 정확성을 87%에서 91%로 높이는 것은 임상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할 때는 영상 판독 외에도 환자의 기저 병력, 가족력, 기대여명, 사회·경제적 여건, 환자 및 보호자의 치료에 대한 선호도 등의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의 업무는 진단 외에도 진료 기록 검토 및 작성, 의료 보험 청구용 진단서 작성, 타 병원 진료를 위한 진료 의뢰서 작성 등 다양한 행정 업무를 포함한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 인력 수급 문제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의 의료 시스템이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의사 1인당 하루 평균 50명 이상의 환자, 5분 내외의 진료 시간은 비정상적이며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더욱이 향후 노령 인구 증가에 따른 의료 수요 급증, 팬데믹 위험의 증가, 왜곡된 수가로 인한 의료 서비스의 지역별·분야별 편중 등의 문제는 현 시스템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최근 출간된 『메디컬 레볼루션』의 저자 피터 리 박사는 AI가 의료 분야에 가져올 혁신을 예고한다. 피터 리 박사는 한국계로, 카네기멜론대의 컴퓨터 공학과 학과장, 미국 고등연구계획부(DARPA)의 컴퓨터 개발 책임자를 거쳐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권위 있는 학자이다. 몇 년 전 필자가 연세대의 정보시스템을 책임지고 있을 때 연세대 캠퍼스를 방문했고 당시 캠퍼스를 안내해 드리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도 그분의 깊은 학식과 품격 있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이 책에서는 챗GPT를 활용한 의료 진단과 환자와의 대화 사례를 통해 AI가 의학 지식 뿐만 아니라 환자의 환경을 이해하고 사회성 있는 진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코 과장된 표현이 없는 그분이 이 책에서 인공지능이 향후 의료 분야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며 향후 인공지능의 의료산업의 영향에 대한 나의 생각에 확신이 더해졌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대부분의 컴퓨터 학자들이 AI를 “통계적 앵무새 (기존 문헌을 의미 없이 짜깁기해 알맞은 단어를 문장에 넣어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로 여기는 반면, 피터 리 박사는 AI의 의식이나 문장 이해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 중 한 명인 하버드 의대 교수인 아이작 코헤인 박사가 챗GPT의 의료 지식이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 왔던 많은 의사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한 것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기업들은 LLM(대규모 언어 모델)을 실무에 적용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다. 고객 상담, 리포트 작성, 문서 기안, 프로그래밍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활용이 시도되고 있다. 또한 기업의 약관이나 규정 준수 등에 대해서도 검색 증강 생성(RAG: Retrieval Augmented Generation) 기법 등을 사용하여 기업 내부의 자료를 이용하면서도 보안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게임, 영화 산업과 함께 의료 산업은 AI 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

맥킨지의 최근 조사 결과는 이러한 추세를 잘 보여준다. 미국 의료 산업의 72%가 이미 AI를 도입했거나 추진 중이며 17%가 올해 안에 실험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어, 총 89%가 AI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보고서는 세계 AI 의료 시장이 향후 10년 간 연평균 37%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며, 불과 2년 후인 2026년에는 그 규모가 약 588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AI가 의료 산업에 미칠 영향력의 규모를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모든 의사·간호사 LLM 통해 환자와 소통

물론 AI의 의료 적용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AI가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특정 인종이나 성별에 편향된 의료 지식을 인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저작권, 개인정보 보호, 정보 보안 등의 법적, 윤리적 문제도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을 극복할 만한 충분한 시장 잠재력과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들 문제는 결국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료기관들은 이미 AI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료기관 중 하나인 메이요 클리닉은 여러 투자자를 모아 대규모 AI 투자를 진행 중이며, 현재 200개 이상의 AI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 칭화대에서는 ‘에이전트 병원’이라는 혁신적인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모든 의사와 간호사가 LLM을 통해 환자와 소통하는 대규모 실험을 진행 중이다. 그들은 기존 의료시스템으로는 2년이 걸리는 1만 명의 환자를 며칠 만에 진료하면서도 93%이상의 정확도를 보였다. 이는 단순 진단을 넘어 상담, 검사, 진료, 후속 조치 등을 모두 포함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미래의 의료는 AI가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AI와 인간이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실험과 연구, 그리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AI와 인간이 어떻게 상호 보완하며 새로운 병원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의료계도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 많은 병원에서 AI를 이용한 진단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넘어 새로운 병원 모델을 실험하고 설계하는 대규모 투자와 연구가 시급하다. AI는 단순히 의료 기술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의료 혁명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준비와 적응은 우리 의료 시스템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며, 나아가 국민 건강과 의료 서비스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의료의 새로운 시대를 향한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서울대에서 계산통계학과를 졸업 후, 카네기멜론대 사회심리학 석사, 남가주대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국가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에서 국무총리와 함께 민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AI 로 경영하라』 『오픈콜라보레이션』 『웹2.0과 비즈니스 전략』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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