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 없는 보리 농작물재해보험 ‘그림의 떡’

2025-05-25

지난해 처음 본사업으로 시행된 보리 농작물재해보험의 가입 기간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민들이 보험에 가입하려면 기간 안에 ‘출현율(싹이 지표면 위로 올라오는 비율)이 80% 이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잦은 비로 파종이 한달가량 지연되면서 많은 농가가 이 조건을 맞추지 못했다.

농작물재해보험은 정책보험으로 판매 기간과 연장 여부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관장한다. 당초 보험 가입 기간은 지난해 10월7일부터 12월6일까지였으나, 농가들의 요청으로 두차례 연장돼 12월20일까지로 조정됐다. 일반적으로 보리는 10월 중순 파종해 11월 상중순에 싹을 보지만, 지난해에는 잦은 비로 파종 시기가 11월20일 이후로 늦어졌다.

하지만 두차례의 기간 연장에도 상당수 농가가 가입하지 못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일조량 부족 등 이상기후로 보리 작황이 좋지 않아 농가들이 재해보험에 걸었던 기대가 컸던 터라 가입하지 못한 농가들의 아쉬움이 크다.

3만3057㎡(1만평) 규모의 논에서 흰찰쌀보리를 재배하는 한주홍씨(59·전남 영광군 법성면)는 보험 판매 기간이 종료된 12월20일에야 파종에 들어갔다. 한씨는 “원래대로라면 10월20∼30일에 파종해야 했는데, 지난해엔 비가 잦아 파종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며 “발아율을 높이려면 땅이 건조할 때 작업을 해야 하기에 지연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5만6198㎡(1만7000평) 규모로 흰찰쌀보리를 재배하는 황규학씨(64·영광군 홍농읍)도 “10월말부터 11월 중순까지 파종을 다섯번에 나눠서 했는데 비가 계속 오고 날씨가 안 좋다보니 싹이 올라오지 않아 보험 가입을 못했다”며 “지난해 이상기후로 작황이 안 좋아 이번 재해보험에 걸었던 기대가 컸는데 가입하지 못해서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남 나주시 왕곡면에서 찰보리농사를 짓는 차동원씨(58)는 “11월초 파종해서 25일 정도 뒤에 싹이 나와 다행히 가입할 수 있었지만, 11월말 이후 파종한 농가들은 추위로 발아가 늦어져 가입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영광군농업기술센터 관계자도 “기온이 낮은 시기에 파종하면 발아가 덩달아 지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재해보험 도입 취지에 맞게 가입 기간을 비롯한 운용 방식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남철 농협맥류전국협의회장(영광 굴비골농협 조합장)은 “농작물재해보험은 이상기후라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한 것인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이상기후 때문에 지연된 파종 시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가입 기간을 유연하게 조정하지 못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을 때 가입 기간 연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유연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농작물재해보험 보리 대상면적은 전국적으로 1만9249㏊며, 이 중 가입면적은 7641㏊로 가입률은 39.7%에 그쳤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파종 시기 지연 상황을 인지하고 산지 요청에 따라 두차례 연장했다”며 “제도 첫 시행임을 감안하면 가입률이 저조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특히 전남의 경우 58.1%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편 보리 농작물재해보험은 2023년까지 전북 김제·군산·부안·익산, 전남 보성·해남 등 일부 지역에서만 가입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 본사업 전환으로 전국에서 가능해졌다.

영광=이시내 기자 cine@nongmin.com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