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국내 등재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 과학적 타당성은 물론 국내 현실과 산업 특성에 부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30일 국회 및 게임업계에 따르면 학계는 질병코드 등재 근거가 되는 연구들이 표본 대표성 부족과 정의의 불명확성, 치료 효과 입증 미흡 등 한계를 안고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정신의학계 내부에서도 여전히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유지되고 있어 섣부른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4면〉
해외 동향과도 온도 차가 있다. 유럽 등지에서는 게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문화적 배경 영향으로 관련 논의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세계보건기구(WHO) 결정에 대한 신뢰가 낮아 독자적 분류 기준을 유지한다. 반면 국내에서 진행되는 논의는 과도하게 편향적이거나 이념적으로 흐를 위험성이 제기된다.
정치·법학계 일각에서는 질병코드 도입이 문화 콘텐츠로서 게임 위상을 훼손하고, 헌법상 보장된 문화 향유권을 제약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게임에만 과도한 소비를 문제 삼는 것은 문화 전반에 대한 비례 원칙에도 어긋날 수 있다. 게임산업 규제의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심리학 및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게임을 통한 과몰입 문제를 곧바로 의료 문제로 연결짓는 접근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자기조절력은 교육과 사회적 환경 조성으로 개선 가능한 영역이다. 게임을 단일 원인으로 지목하거나 기술적 통제만을 강조하는 방식은 오히려 몰입의 본질적 맥락을 놓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책 추진의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질병코드 도입은 복지·의료 등 재정이 투입되는 정책 결정인 만큼 충분한 실태 조사와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반영하지 못한 채 일방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자신문은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려는 국내 일부 여론과 정책 추진 흐름에 대응해 학계·정치권·산업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분석했다. 앞으로 'K-게임 명예혁명' 시리즈를 통해 게임의 본질적 가치와 문화적 위상을 조명하고, 산업 발전과 인식 개선을 위한 제언을 해나갈 계획이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