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멋쟁이 엘리트화가들의 미술운동,MMCA 청주서 다시 본다

2025-10-17

모던아트 동인들이 펼친 1950년대 미술 소환

김경 문신 한묵 등 11명의 작품 156점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서 내년 3월 8일까지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1950년대말. 당시는 6.25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않은 척박한 시기였다. 하지만 일군의 엘리트 화가들은 하나로 뭉쳐 '모던 아-트협회'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그 선봉에 선 인물은 한묵이었다. 이북 출신으로 배를 타고 남하한 한묵은 한때 반동으로 몰려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혹독한 고난을 거쳤음에도 한묵은 박고석·유영국·황염수 등과 함께 1957년 '모던 아트협회'를 만들고, 새로운 조형실험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예술만이 그에겐 살 길이었던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이 한국의 1세대 모더니스트들이었던 모던아트협회 동인들의 예술을 조명하는 기획전을 마련했다. MMCA는 전후 모던아트협회의 활동상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전환기적 장면을 조명하는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을 지난 10월 2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개막했다.

1957년 박고석·유영국·이규상·한묵·황염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모던아트협회는 '현대회화의 문제'를 공통의 기조로 삼으며 국전의 고답적인 사실주의와 앵포르멜의 급진성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일본 유학파였던 이들은 국전의 지루하고 몰개성적인 아카데미즘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화단의 또다른 흐름이었던 앵포르멜 운동은 너무 급진적이라 판단하고, 국전파와 앵포르멜파 사이의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 것.

이들은 전쟁의 상처와 재건의 긴장 속에서도 치열하게 회화 실험을 거듭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일본서 서구 모더니즘을 수학한 엘리트 화가라는 점. 대부분 유복한 가정 출신에, 멋쟁이 화가였던 모던아트 동인들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4년간 모두 여섯 차례의 전시를 열며 생활과 자연, 일상을 추상의 언어로 전환하는 실험을 이어갔다. 이들은 추상을 단순한 양식이 아닌 삶과 정신, 현실과 사유를 통합하는 태도로 이해했다.

MMCA 청주의 기획전시실서 개막한 이번 전시는 '모던아트협회 이전', '모던아트협회 1957-1960', '모던아트협회 이후' 등 세 파트로 짜여졌다. 모던아트협회의 형성과 전개, 해산 이후의 흐름까지 아우르며 김경·문신·박고석·한묵·황염수·유영국·이규상·임완규·정규·정점식·천경자 등 협회 참여작가 11명의 작품 156점을 망라했다. 또 30점의 아카이브도 곁들여 한국현대미술의 전환기적 상황 속 작가들이 펼친 예술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효진 학예연구사는 "모던아트협회는 특별한 사조라든가 경향에 국한되지 않고 서로의 작업을 존중하는 '열린 동인'이었던 것이 특징"이라며 "4년이라는 짧은 기간 이어졌지만 이들의 활동은 이후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을 견인하는 단초가 됐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60~70년 전 작품을 다루고 있어 연구와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협회 주최 전시의 관련 비평과 기록을 기반으로 실제 전시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여러 기관과 유족, 소장가들의 도움으로 당시 출품작의 상당수를 재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MMCA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중 관련 작품도 출품됐다.

전시 도입부는 1950년대 이후 시대순으로 참여작가들의 작업과 활동, 전시를 첨단 AI기술을 활용해 생동감있게 영상으로 만든 김시헌 작가의 '전위의 온기'로 시작한다. 작가들이 자신들의 삶과 교유, 현대미술에 대한 생각을 담은 수필과 비평도 '읽을거리'로 곁들여져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1부 '살며, 그리며- 모던아트협회 이전'은 모던아트협회 작가들 교유의 출발점이었던 부산 피란시절의 삶과 창작에 촛점을 맞췄다. 작가들은 피난지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판자집('하꼬방')을 아틀리에로 개조해 화업을 이어갔고, 다방 등에서도 전시를 열었다. 실제로 한묵은 판자집을 그린 '판자집 풍경'(1953)도 남겼는데 이번 전시에 나왔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하꼬방을 배경으로, 갓난아기를 업은 엄마와 할머니가 등장하는 이 그림은 그러나 따뜻한 온기도 흘러 작가의 인간애를 감지케 한다.

한묵은 또 '꽃과 두개골'(1953)과 '모자(母子)'(1954)를 통해 자신이 목격했던 전쟁의 아픔을 전하고 있다. 피란민들이 모여살던 부산 법일동 철로변을 그린 박고석의 '범일동 풍경'(1951)과 황염수, 정규 등의 당시 개인전 리플릿은 팍팍한 상황 속에서도 예술에의 의지를 견지했던 작가들의 면모를 보여준다.

지금은 조각가로 더 널리 알려진 문신의 '서대문에서'(1958), '도시풍경'(1959)은 그가 모던아트협회 참여를 계기로 서울서 활동을 시작할 때 그린 풍경화다. 문신 등의 참여는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환영했던 모던아트협회의 포용적 측면을 입증해준다.

2부 '열린 연대-모던아트협회 1957-1960'는 모던아트협회 활동시기 작품 71점이 작가별로 전시된다. 1957년 한묵, 박고석, 황염수, 이규상, 유영국이 참여했던 동화화랑에서의 제1회전을 시작으로 1960년까지 6회의 전시가 이어졌다. 또 문신, 정점식, 정규, 김경, 천경자, 임완규가 합류하면서 협회는 활기가 돌았다.

모던아트협회는 특정한 양식을 강제하지 않고, 구상과 추상, 표현주의와 절대추상을 모두 아우르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허용했다. 각 작가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했는데 이는 1960년대 이후 등장하는 다양한 작가그룹과 실험적 전시의 토대가 되었다. 2부에서는 개별 작가의 조형의식과 실험을 포용하면서도 공동의 문제의식을 공유한 모던아트협회의 목표와 의의를 진단하고 있다.

마지막 3부 '서로의 길-모던아트협회 1957-1960'은 모던아트협회가 해산된 이후, 1970년 중반까지 개별 작가들의 작업과 활동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짜여졌다. 1961년 문신과 한묵이 각각 '도불(渡佛)전'을 연 뒤 파리유학길에 오르고, 김경(1965), 이규상(1967), 정규(1971)가 연달아 짧은 삶을 마감하면서 협회는 1960년 6회 전시를 끝으로 해산된다. 지향점이 제각각이었기에 결국 짧게 막을 내린 것.

당시 신문비평과 기사를 바탕으로 출품작을 확인해 전시를 구성한 결과 제4회 전시 출품작인 박고석의 '탑'(1958), 제5회 전시 출품작인 황염수의 '나무'(1950년대), 한묵의 '태양의 거리'(1955)를 발굴해 이번 기획전을 통해 최초로 공개한 것은 소득이라 하겠다.

1960년대부터 한묵과 유영국은 독자적인 화풍을 정립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임완규와 정점식은 각각 홍익대, 계명대 교수로 임용돼 후학양성에 힘썼다. 이 시기 제작된 유영국의 '새벽'(1966), 한묵의 '무제'(1965)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박고석의 '소'(1961) 역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인데, 훗날 '산의 화가'로 자리매김한 박고석의 이례적인 기하학적 추상회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순우 관장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도예를 전공한 정규는 회화 뿐 아니라 도자기 판화 유화를 넘나들며 '현대의 종합예술'을 지향했다. 전시에는 정규의 도자기, 판화, 유화가 모두 나왔다. 문신의 부조 작품 '무제'(1963)와 펜 드로잉 '무제'(1968)는 회화에서 조각으로 이행하는 시기의 작업을 보여준다. 또 1963년 개인전에 출품했던 이규상의 회화,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박고석의 산 그림도 3부에서 만날 수 있다.

이렇듯 모던아트협회는 국전을 중심으로 한 제도권미술의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출발해 '제3의 실험'을 모색했다. 동인들은 급진적 전위를 구가하던 앵포르멜그룹과도 선을 그으며, 일본서 습득한 서구 모더니즘에 기반하되 각자 고유한 회화세계를 변주하는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확실하게 묶기에는 이들의 작업은 여러 갈래였다. 그렇다 해도 비평과 전시, 창작이 결합된 공론장으로서 모던아트협회는 향후 우리 미술의 발전을 이끄는 단초를 제공한 것만은 틀림없다.

한편 2층의 보이는 수장고에는 1970년대부터 '장미 화가'로 알려진 황염수의 장미 연작과 팬지, 양귀비, 해바라기를 그린 작품 22점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강렬한 색채 대비에 능했던 작가의 장미 그림 연작은 오늘 다시 봐도 매력적이다.

미술관측은 전시기간 중 연구및 기획자 대상의 '현대미술사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한다. 한국전쟁 전후 시대적 맥락과 현대미술의 전개를 주제로 한 교사 및 학생 대상 프로그램, 유화의 보존과학 관련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짧은 활동이었지만 모던아트협회가 남긴 문제의식은 이후 단색화와 민중미술 등으로 이어지며 한국현대미술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며 "이번 전시가 모던아트협회의 형성과 전개, 해산 이후의 흐름까지 아우르며 작가들의 다양한 예술세계와 시대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지형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2026년 3월 8일까지. 입장료 2000원.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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