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멕시코·캐나다를 동시다발적으로 겨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부과 발언은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할 ‘트럼프 2기’ 통상 정책의 예고편이다. 대미(對美) 교역에서 이익을 본다면 동맹 및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도 예외는 없다는 기조 아래 대미 3대 수출국을 본보기로 삼았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트럼프가 취임과 동시에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무력화부터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트럼프가 25일(현지 시간) 내년 1월 20일 취임 첫날 각각 25%의 관세와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멕시코·캐나다와 중국은 2002년부터 줄곧 대미 수출액 기준 상위 3위권을 기록해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멕시코는 지난해 연간 미국에 4756억 달러(약 666조 1253억 원)를 수출하며 중국을 제치고 1위로 부상했다. 중국은 같은 기간 4272억 달러로 2위를 기록했고 그 뒤를 캐나다(4211억 달러)가 이었다. 한국의 경우 1162억 달러 규모를 수출해 6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트럼프가 관세 방침을 밝힌 직후 류펑위 미국 주재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무역·관세 전쟁의 승자는 없다”며 “중국은 중미 경제 및 무역 협력이 본질적으로 상호 이익이 된다고 믿는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 역시 일제히 트럼프의 발언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중국중앙TV(CCTV)는 “관세가 실현되면 매년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최대 780억 달러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짚었고 경제 매체 재련사는 “트럼프가 관세 몽둥이를 다시 휘두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은 이날 트럼프의 관세 리스크를 이유로 내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존 4.3%에서 4.1%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트럼프는 중국에 60% 초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미국과 USMCA를 체결해 무관세 혜택을 보장받았던 캐나다와 멕시코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트럼프는 멕시코에 대해 현지 생산 자동차에 100~200%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두 국가에 대한 관세 계획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지난해 기준 멕시코 수출의 83%, 캐나다 수출의 75%가 미국으로 들어갔을 만큼 두 국가의 대미 교역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블룸버그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트럼프 발언 직후 그에게 연락해 국경 보안 및 무역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에게 캐나다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 수가 멕시코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이번 발언을 통해 1기 행정부에서 폐기하지 못한 북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차기 행정부에서 무력화하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내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시 W 부시 대통령 시절 무역 협상가를 지낸 존 베로노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트럼프의) 일방적 관세 부과는 USMCA 협정을 분명히 파기하려는 것”이라며 “관세 방침에 영향을 받는 각국이 미국 상품에 관세로 보복할 경우 미국 업체들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