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 첫 간병살인 보고서 작성… 김성희 경찰대 치안정책硏 실장
“치매 걸린 배우자 돌보다 본인도 치매
대부분 범행 동기 ‘최악의 상황’ 절망 탓
간병인 휴식권·공공돌봄 등 지원 강화를”
“가족이라는 이유로 돌봄을 떠넘기는 사회는, 결국 그 가족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국내 정부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간병살인 실태·분석 보고서를 작성한 김성희(사진)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실장은 30일 세계일보와 서면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실장은 “간병살인은 단지 ‘누군가 돌보다가 지쳐서 저지른 개인의 범죄’가 아니다”라면서 “이는 사회가 감당하지 않은 절망의 결과이자, 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한 책임의 파탄”이라고도 했다. 돌봄의 책임을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화가 진행 중인데도 우리나라에선 간병살인과 관련한 실태조사나 실증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김 실장은 “우리나라 법원이나 검찰, 경찰은 간병이 동기가 된 살인을 별도로 집계, 관리하지 않는다”며 “동시에 우리는 간병이라는 돌봄 노동을 여전히 가족, 특히 여성의 사적인 의무로 보는 시선이 강해 이 문제를 공론화하거나 제도적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간과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찍 고령화 세대로 진입한 일본에서는 2007년부터 경찰청 범죄통계 살인의 동기 부분에 ‘개호(介護·간병)피로’라는 범주로 간병과정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사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는 노노(老老)간병 살인 케이스를 꼽았다. 그는 “대부분 노노살인의 스토리는 자식들이 독립한 후 여생을 함께 보내던 배우자가 치매와 같은 질병이 발병할 경우, 긴 시간을 독박간병에 할애하게 된다”면서 “결국 자신도 치매와 같은 질병에 걸려 더 이상 간병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배우자를 살해 후 자살을 시도하는 양상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범행 동기는 더 이상 상황이 나아질 것 없다는 절망에서 기인한다”며 “간병의 부담을 자식들에게 지우지 않으려는 부모로서의 마지막 책임감도 많은 부분 차지하는 것으로 사례에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새 정부가 간병인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간병인 보호법’과 같은 법령의 개정이나 제정을 통해 간병인의 간병 휴식권이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되어야 할 시점”이라며 “일본의 예처럼 개호휴가 제도, 지역 돌봄 매니저, 공공 간병사 확대 등 구조적 돌봄 완충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간병인의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주기적 평가와 상담 연계 그리고 돌봄으로 인한 극단 선택이나 범죄 예방을 위한 고위험군 추적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도 아흔이 넘은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털어놓은 김 실장은 “이번 연구는 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이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는 가슴앓이에 대한 문제 제기”라며 “간병살인이 돌봄 부담이 극에 달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가족 내 사건’ 혹은 ‘우발적 범죄’로 치부돼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인 지원 없이 지속되는 간병은 정서적 연결이 아닌 ‘생존의 투쟁’이 되며 인간관계가 얼마나 비극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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