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가 했는데, 어느새 쌀쌀해지고 기온은 점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봄, 여름,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다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에요. 우리 인류는 열대 지방,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때문에 더위에는 생각보다 강하지만, 조금만 추워져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세포가 파괴되면서 팔다리를 잃거나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털 없는 원숭이’ 인간은 옷을 입고, 집을 짓고, 불을 때며 겨울에 맞섰지만,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동상으로 인한 부상이나 사망자가 끊이지 않아요. 그것은 혹독한 시베리아에서 생활하며 추위에 더 강해진 우리네 한국인도 마찬가지죠.
많은 판타지 이야기에선 겨울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겨울은 대지의 신 데메테르가 딸 페르세포네를 저승에 보내야 하는 것을 슬퍼하는 시간이죠. 동양에선 여름 신 염제는 잘 알려졌지만, 겨울을 상징하는 신이 누군지는 잘 모릅니다. ‘동장군’이란 말이 존재하지만, 이는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처참한 패배를 경험한 나폴레옹 군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라 하죠. 어쩌면 겨울은 생각조차 싫은 존재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 멀리 유럽 북쪽에 살았던 게르만인들은 달랐어요. 그들은 겨울의 추위가 실체를 가진, 신에 맞서는 존재가 만드는 것이라 여겼죠. 흔히, 서리 거인이라 불리는 요툰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최초의 생명체 이미르에게서 태어났어요. 오딘과 신들은 이미르를 죽여 그 몸으로 세상을 만들었지만, 요툰들은 남아 신과 대립하죠. 인간과 신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이들은 이따금 신과 협력하거나 결혼하기도 했지만, 훗날 라그나로크에서 신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수가 됩니다. 겨울의 존재인 요툰이 세상을 위협하는 적인 만큼, 게르만 신화에서 ‘겨울이 온다’라는 말은 ‘라그나로크가 온다’라는 것처럼 위험한 표현이겠죠.
‘겨울이 오고 있다’라는 표현은 소설이자 드라마로 유명한 ‘왕좌의 게임’ 시리즈를 통해 한층 더 강력해졌습니다. 조지 R.R. 마틴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왕좌의 게임’ 드라마는 2011년부터 9년에 걸쳐 방송되었고, 지금도 외전 시리즈가 꾸준히 나올 정도로 인기죠. 이 이야기의 중심은 바로 요툰을 연상케하는 겨울의 적, ‘백귀’와의 싸움입니다. 눈처럼 하얀 피부를 지닌 그들은, 요툰처럼 고대의 전설 속에 존재하는 적입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 의 세계에는 겨울이 일정한 주기로 찾아오지 않죠. 여름도 겨울도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으며,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같은 계절이 이어질 수도 있어요.
문제는 겨울, 특히 ‘장대한 밤’이라 불리는 기나긴 겨울이면 추위만이 아니라, 끔찍한 존재인 백귀가 밀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홀로 한 부대를 전멸시킬 만큼 위험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은 좀비 같은 존재인 와이트를 만들어낸다는 거죠. 이들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북쪽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나이트 워치라는 조직을 만들어 백귀와 야만인의 침입에 대비했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백귀의 존재를 전설로만 취급하며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백귀에 의해 북쪽을 지키는 스타크 가문의 순찰대가 희생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장벽을 지키는 의무와 역할을 수행하며, 전통과 명예를 중시하는 스타크 가문은 ‘겨울이 오고 있다’라며 경고하지만, 오직 눈앞의 권력과 이익에만 신경 쓰는 사람들은 도리어 스타크 가문을 공격하죠. 심지어 중세 유럽 세계뿐만 아니라 『얼음과 불의 노래』 세계에서도 중요했던 ‘손님을 보호하는 의무’를 저버리고 결혼식에 스타크 가문 사람들을 초청하여 학살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이가 희생되고 가문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연합은 붕괴되죠. 결국 겨울이 다가왔을 때, 밀려온 백귀에 의해 장벽은 함락되고 말아요. 마법적 힘을 지닌 장벽이 뚫리면서 나이트 워치들은 패배하고, 백귀의 왕이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향하면서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처합니다.
겨울과 함께 밀려온 백귀와의 싸움은 뒤늦게 손을 잡은 인간들의 결단으로 운 좋게 인간 측의 승리로 막을 내려요. 하지만 이로 인해 입은 피해와 희생은 절대로 작은 것이 아니었죠. ‘겨울이 오고 있다’라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눈앞의 권력과 이익에만 눈이 멀어 서로를 해치지 않았다면, 그 피해는 훨씬 줄어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장벽의 도움으로 좀 더 수월하게 백귀를 막을 수 있었겠죠.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올겨울은 가장 춥고 긴 겨울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죠. 분명 추운 겨울은 지루하고 불편한 시간이겠지만, 소설·만화·드라마·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 『얼음과 불의 노래』 같은 작품을 살펴보기에는 어울리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 기나긴 이야기에서 어떤 내용을 볼 수 있을까요.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