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임산부 신분' 이용해 유괴·살인 저지른 전현주…경악스러운 실체와 근황

2025-05-16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방송된 '내 아이가 사라졌다' 특집 3부작 중 첫 번째 '만삭의 유괴범, 전현주'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개그맨 정성호, 배우 홍화연, 그룹 오마이걸 멤버 미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6평짜리 고향

오늘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아이는 어릴 때 아주 특별한 집에 살았어. 이 집의 크기는 약 6평 정도. 방 한쪽엔 기저귀와 분유가 쌓여 있고, 빨랫줄엔 이제 막 손빨래를 마친 자그마한 배냇저고리가 걸려 있어. 장난감과 책, 그리고 벽에 붙은 숫자 포스터까지, 누가 봐도 평범한 아기방 같아. 그런데, 이 집엔 몇 가지 규칙이 있어. 첫째, 외출은 하루 딱 한 시간. 둘째, 나이 제한이 있어. 생후 18개월이 되면, 무조건 이 집을 떠나야 해. 그리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어. 아니 돌아와서도 안 돼. 이 집, 어딘지 알겠어?

"바깥세상으로부터 격리된 공간. 범죄를 저지르고 그 죗값을 치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는 젖먹이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교도소야. 올해 3월 기준으로, 전국 교도소에 생후 18개월 미만의 아이가 11명 정도 있대. 그럼 이런 아기가 들어올 때, 다른 수용자들 반응은 어떨까? 난리가 나. 서로 안아보겠다고 줄을 설 정도야.

여긴 서울구치소야. 한 아이가 입소 절차를 밟고 있어. 솜털이 보송보송한 게, 탯줄을 뗀 지 얼마 안 된 젖먹이 신생아야. 그런데, 오늘따라 수용자들 반응이 이상하리만치 싸늘해. 바로 아이의 엄마 때문에. 그녀는 얼마 전,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로 대한민국 전체를 대혼돈에 빠뜨린 최악의 범죄자야.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오늘 검거된 박나리 양 유괴 용의자 중 한 명인 전현주 씨가 지금 서초경찰서로 압송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만삭의 유괴범' 전현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 그녀는 뱃속에 아이를 품은 임신 8개월 차에 다른 집 아이를 유괴했어. 지금껏 그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는 전현주의 근황이 방송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야. 궁금하지? 지금 바로, 28년 전 그날로 돌아가 볼게.

▲ 돌아오지 않는 아이

때는 1997년 8월 30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야. 한 여자가 초조한 듯 거실을 서성이고 있어. 여자는 학원에 간 딸을 기다리고 있어. 바로 이 아이야.

나이는 8살, 이름은 박초롱초롱빛나리. 실명이야. 혹시 이 이름, 들어본 적 있어? 당시 아이는 이 특이한 이름 때문에 더 주목을 받았다고 해. 나리는 아빠가 지은 이름이야. 늦은 장가에 어렵게 얻은 첫딸이라,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긴 이름을 선물해 주고 싶었대.

나리는 이날 하늘거리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섰어. 학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도보 5분. 오후 2시 40분에 수업이 끝나는데 벌써 오후 3시야. 평소라면 오고도 남아야 할 시간인데 아무래도 이상해. 그래서 엄마는 학원에 전화를 걸었어. 학원 선생님이 말하길, 나리가 수업 끝나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쌍둥이 동생들이랑 함께 갔다는 거야. 엄마가 이번엔 쌍둥이 집에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수화기를 든 엄마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당시 쌍둥이가 엄마에게 전한 이야기야.

"그 언니가 와 가지고요. '우리 조카도 여기(학원) 다니는데, 너도 다니니?' 했는데 나리 언니가 아무 말도 안 했고요. 엘리베이터 탔어요. 그 모르는 언니가 계속 걸어가자고 해가지고요.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한테 '안녕' 하고요, 우리도 '안녕'하고요. 초등학교 있는 쪽으로 갔어요."

-쌍둥이가 엄마에게 전한 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했어. 나리가 어떤 '모르는 언니'를 따라서 집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걸 봤다는 거야. 나리가 평소 언니라고 부르며 따를 사람? 없어. 그럼 이거 무슨 상황이야? 유괴야.

그로부터 10분 뒤. 누군가의 삐삐가 울렸어. 삐삐 사용법 알아? 상대방이 내 삐삐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음성메시지를 남기거나 숫자로 번호를 남길 수 있어. 그럼 내가 다시 내 삐삐로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는 시스템이야. 당시 삐삐에는 '533-0330-8282'라는 번호가 찍혀 있었어. '8282'는 '빨리빨리'라는 의미야. 뭔진 몰라도 급한 일이 있다는 거야. 당시 이 삐삐 주인을 직접 만났어.

"97년 사건 당시 서초경찰서 막내 형사였습니다. 서초경찰서 형사계 전화번호가 533에 0330. 그래서 533에 0330 8282 하면 그거는 비상, 빨리 사무실 집결, 이런 표시였었습니다."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그 당시에는 강남이나 서초에 유괴 사건이 굉장히 많이 일어날 때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애가 들어오지 않는다 하는 얘기를 듣고 직감으로 '어? 이거는 유괴다!' 감을 잡았지."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결국 엄마가 신고를 했어. 토요일 오후, 긴급 호출을 받은 형사들은 곧장 나리 집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감청 장치를 설치했어.

"유괴가 되면 돈을 요구하거든. 그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 집 전화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우리가 전화기에 발신자 추적을 다 걸어놨죠."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통신사를 통해 바로 발신지 추적이 가능해. 유괴범의 전화가 오면, 잡히는 건 시간 문제야.

▲ 유괴범의 협박 전화

잠시 후, 오후 6시. 나리가 사라진 지 3시간 째야. 나리네 집 전화벨이 울렸고, 엄마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어.

범인: 나리는 잘 있어요. 설마 신고한 건 아니겠지?

엄마: 그럼요, 원하시는 게 뭔지 얘기해 주시면 내가 다 들어드리고.

범인: 2천만 원을 준비해.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어. 이제 발신지를 추적해야지. 그런데, 안돼. 통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추적 불가야. 아무런 단서가 없어.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형사들은 주변 탐문을 시작했어. 목격자는 없는지, 피해자 가족과 원한 관계는 없는지 확인에 나선 거야. 근데 이걸 대놓고 할 수는 없어. 유괴 사건은 극비수사가 원칙이야. 만약 신고한 게 범인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다급해진 범인이 나리를 해칠 수도 있잖아.

"만약에 신고를 하면 범인이 다급해진다고. 그러면 아이를 해할 수가 있지. 유괴 사건은 시간 다툼이잖아요. 골든타임이라는 건 우리가 최고로 볼 땐 6시간 본다고요."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이제, 다음 전화를 기다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한 달이든 몇 개월이든 기다려야지. 전화가 올 때까지. 단서는 그거잖아요."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나고, 일요일 오후 3시. 범인은 첫 번째 전화 이후 소식이 없는 상태야. 그때였어. 드디어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어.

엄마: 여보세요? 얘기를 하세요. 원하는 게 뭔지.

범인: 돈이 들어있는 은행 카드를 가지고.

엄마: 예. 은행 카드요?

범인: 명동 전철역.

엄마: 잠깐만요, 제가 연필 갖고 적어볼게요.

범인: 빨리해

엄마: 명..동..전..철..역..

범인: (뚝)

범인 입에서 장소가 나왔어. 명동 전철역. 게다가 나리 엄마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이번엔 발신지 추적에도 성공했어. 위치는 명동의 한 대형 쇼핑몰 앞 공중전화야. 형사들은 명동으로 갔어.

"발붙일 틈이 없었어요 명동에. 그러니까 범인을 식별하기가 힘들죠. 도주도 쉽고. 범인은 그걸 노렸을 겁니다. 여자가 한 60~70% 될 거예요. 명동에. 찾을 수가 없어요."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지금 범인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젊은 여자'와 '목소리' 뿐이야. 막막해도 너무 막막해. 구 형사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공중전화 수화기를 잘랐어.

"그게 잘 잘리지도 않아요. 근데 뭐 잘라야지. 뽑아버리고 막 부서지든 말든 우리는 빨리 범인 잡아줘야 되니까. 한국통신에서 전화기 잘라갔다고 뭐라 하더라고."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한편 그 시각, 조상복 형사는 명동에서 잠복을 시작해.

"범인이 명동 주변에 있을 거다, 연고지가 있는 사람이다. 명동 주변으로 우리가 많은 경찰을 투입했어요."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명동 일대 모든 공중전화 위치를 확보하고, 인근 경찰서에 공조도 요청했어. 만약 명동에서 또 한 번 협박 전화가 걸려 오면, 곧바로 달려가 현장을 덮칠 계획이야. '제발, 딱 한 통화만 더 와라. 딱 한 통화만' 하는 마음이야.

▲ 유괴범은 명동에 있다

어느덧 밤 9시. 세 번째 전화가 걸려왔어.

범인: 메시지 건물.

엄마: 메시지? 메시지 건물? 몇 층짜리예요?

범인: 10층.

엄마: 10층 어떻게?

범인: 8층에 가서 기다려.

엄마: 8층 어디예요? 잠깐만요. 제가 그걸 정확히 알아야지 찾아갈 수 있죠. 돈은 2천만 원이에요?

범인: (뚝)

그래도 다행히 구체적인 장소가 나왔어. 어디? 메시지 건물. 아까 발신지 추적했을 때 쇼핑몰 앞에 있는 공중전화라고 했잖아? 그 쇼핑몰이, 바로 메시지 건물이야. 그런데 1분 뒤, 네 번째 협박 전화가 걸려왔어.

범인: 돈으로 말고 카드로.

엄마: 카드로 어떻게? 나 카드도 없는데? 난 지금 현금만 갖고 있어요.

범인: 그렇다면 나리는 못 보는 거지.

엄마: 돈 드리는 건 2천만 원이 아니라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우리 빛나리가 잘 있는지, 난 그게 가장 중요해요.

범인: 카드 받는 즉시 빛나리하고 통화할 수 있게 해 줄게. 지금부터 40분이야.

엄마: 예? 지금부터 40분에 내가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범인: (뚝)

범인은 이런 식으로 전화를 네 차례나 끊어가며 통화를 걸어 애간장을 태웠대. 그런데 말야, 40분 만에 명동까지 엄마는 못 가도 조 형사는 갈 수 있잖아? 지금 조 형사가 명동에서 잠복 중이니까. 그럼 조 형사가 메시지 건물로 가면 되겠지? 그런데, 조 형사는 지금, 메시지 건물이 아닌 커피숍에 있어.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3분 전, 조 형사에게 다급히 무전이 와.

"조 형사, 잘 들어. 지금 나리 엄마가 범인과 통화 중인데, 발신지가 떴어. 명동에 있는 SE 커피숍!"

나리 엄마가 납치범과 통화하는 사이에, 범인의 위치가 확인된 거야. 무전을 받은 조 형사는 그 길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어. 같은 시각, 범인은 이런 상황을 꿈에도 모른 채 계속 통화 중이야. 그리고 드디어 조 형사가 커피숍에 도착했어. 그의 시선이 다급히 전화기가 있는 카운터를 향해. 그런데, 거기 있어야 할 범인이 없어. 아주 간발의 차로 엇갈린 거야. 직원에게 물으니 5분 내에 커피숍을 나간 사람이 없대. 이 얘긴 뭐야? 범인은 지금, 이 안에 있다는 거야. 일단 커피숍 문부터 걸어 잠갔어.

현재 시각, 일요일 밤 9시. 유괴된 지 벌써 30시간 째야. 조 형사가 침착하게 커피숍 안을 둘러봐. 커피숍엔 남자 1명, 그리고 여자 12명, 총 13명의 손님이 있어. 지금부턴 이들 모두가, 용의자야.

조 형사가 한 명 한 명 신분증을 확인해. 그러면서 동시에 '목소리'를 체크했어. 형사들은 녹음기에 일일이 목소리를 녹음하고, 통화 목소리도 확인했어.

"하나하나 다 범인이라 생각하고 인적사항을 꼼꼼히 다 적었죠. 그러고 목소리를 전부 다 우리가 하나하나 해가지고 목소리를 녹음을 해놓고 대조하기 위해서 다 했어요. 목소리를 또 (범인이) 가성으로 했기 때문에, (손님들의) 진짜 목소리만 녹음했으니까, 그 가성이 어떻게 나오는지 분석을 다 하고. 또 하나하나 보내고 하나하나 보냈는데. 안 나왔지."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범인이, 없어. 목소리가 일치하는 사람도, 의심 가는 인물도 없어.

▲ 공개수사 전환, 폭발한 관심

어느덧 유괴 4일째. 결국 나리의 부모님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돼.

"초등학생 어린이가 대낮에 20대 여자에게 유괴된 지 나흘이 지나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섰습니다."

"부모님은 나리를 찾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뉴스 中

나리 유괴 사건 공개되자 전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어. 신문사와 경찰서로 무려 8천 건이 넘는 제보가 쏟아지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수사 지시를 내렸어.

"전부 다 그냥 나리 사건이었어요. 도배를 했어요 그 당시에는. 어린애잖아요. 어린애가 그랬다고 하니까, 무게감이 다르죠."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이제 공개수사로 전환되니까 막 무속인들도 전화 오고. (나리가) '김포에 있다', '저기 어디 산속에 살아있다' 수백 통 수천 통 전국에서 다 전화 오니까."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하지만 온 나라가 이렇게나 간절히 무사 귀환을 바라는데도, 여전히 나리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아.

어느덧 나리가 사라진 지도 열흘이 지났어. 이른 아침, 몸을 가눌 기운조차 없는 나리 엄마가 하나 둘, 벽에 풍선을 붙이기 시작해. 오늘은, 나리의 생일이야. 이사 오고 맞는 첫 생일이라,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해주기로 약속했대. 비록 나리는 없지만 엄만, 그 약속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해. 나리방을 풍선과 친구들의 축하 카드로 꾸몄어. 엄마는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도 준비했어. 엄마는 딸 나리에게 편지도 썼어.

"사랑하는 내 딸 박초롱초롱빛나리야. 지금 어디서 어떻게 있는지, 나리 생각으로 이 엄마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나리가 지금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은 믿음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단다. 지금 어디에 있든지 데리고 있는 사람 말 잘 듣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라.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살아있을 거란 희망에 버티다가도, 헛된 희망이면 어쩌나, 또 두려움이 앞서.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생일파티가 열렸던 이날.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돼. 범인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 내 딸이 유괴범입니다

나리의 생일파티가 열리던 그 시각. 구준회 형사는 서초서에 있다가 전화를 받았어. 황당한 거짓 제보 전화들에 구 형사도 슬슬 지쳐가던, 그때였어.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어. 근데 이번 전화는 달랐어. 전화를 받은 구 형사는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어.

"그때 저희 강력 2팀으로 전화가 왔어요. 딱 목소리가 이건 뭔가 다른 목소리야. 그냥 일반인이 제보하는 목소리가 아니고 엄청나게 그 미안한 감정이 뚜렷한 그런 통화 내용이었어요. 이제 딱 받으니까.. '제 딸이 범인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 차분하게."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놀랍게도, 유괴범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이거, 믿을 수 있는 제보일까? 일단 확인부터 해 봐야지. 형사들은 곧바로 제보자를 만나기로 했어. 약속 장소로 한 중년의 남성이 걸어와. 형사는 녹음해 뒀던 범인의 목소리를 들려줬어. 그러자 이 남자는 체념한 듯 말했어.

"죄송합니다. 제 딸이.... 맞습니다."

부모라서 내 딸의 목소리를 알 수 있다는 거야. 곧바로 형사가 물었지. 딸의 이름이 뭐냐고. 그런데, 대답을 들은 형사가 깜짝 놀라. 사실 형사들은 이미 그녀를 만난 적이 있거든. 시간을 다시 8일 전으로 돌려 볼게.

나리가 납치된 지 이틀째 되던 날. 명동의 커피숍을 덮친 조 형사가 한 명 한 명, 신분증 검사를 시작하던 그때였어. 갑자기 한 여자가 쓰윽 다가오더니 굉장히 난처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해.

"저, 형사님. 근처에 후배들 있는 곳에 가방을 두고 와서요. 신분증이 그 안에 있는데, 후배에게 호출을 좀 해도 될까요?"

여자의 설명은 이랬어. 인근에 일행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데 삐삐가 와서 전화기를 찾다가 우연히 커피숍에 들어왔다는 거야. 조 형사는 확인을 해야 하니, 그 후배를 이쪽으로 오게 하라 했어. 잠시 후, 여자의 호출을 받은 후배 김 씨가 커피숍으로 들어와. 그런데 형사들을 본 김 씨가,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해.

"아니, 사람을 이렇게 오래 세워두면 어떡합니까! 이러다 문제라도 생기면, 형사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예?"

신분증이 없다던 이 여자, 사실 만삭의 임산부였어.

"임산부가 설마 어떻게 범인이 되겠어요. 그리고 또 전혀 불안해하는 게 없었어요. 얼굴이 붉어진다든지 초조해지든지. 그런 기색이 없었어요. 그냥 태연했어요. 그러니까 추궁도 추궁만큼 하지도 못하고, 빨리 가라고 한 거죠. 그러니까 안이한 생각을 한 거죠."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결국 조 형사는 간단한 인적 사항만 확인하고 그녀를 풀어줘야 했어. 이 사람이 바로, 나리를 유괴한 만삭의 임산부 전현주야. 당시 나이는 28세였어.

▲ 만삭의 유괴범 전현주

그런데 말야, 대체 어쩌다 임산부가, 그것도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는 예비 엄마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집 아이를 유괴할 생각을 했을까? 이 미스터리를 풀려면, 먼저 그녀에 대해 알아야 해.

전현주는 대학 시절, 문예 창작을 전공했어. 원래는 무역학과를 다녔는데 작가가 되고 싶다며 뒤늦게 문창과로 다시 입학을 한 거야.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라며 그 시절 그 어렵다는 유학도 다녀왔어.

"가정은 아주 정상적인 그야말로 보수적이고 조용하고. 뭐 괜찮게 살았죠."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성격도 화통해서 인기가 꽤 많았다고 해. 그러던 어느 날, 전현주가 연애를 시작했어. 상대는 같은 과를 졸업한 이 씨. 그는 아동극을 만드는 연출가야. 둘은 곧 결혼도 약속하게 돼. 뱃속에 아기가 생겼거든. 근데 이 소식을 들은 전현주의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했어. 결국 두 사람은 부모님 없이 결혼식을 올려. 그 이후 그녀의 인생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해.

"연애 결혼했는데 돈을 못 벌어. 그러니까 한 달에 평균 한 30만 원 벌어오는 셈인데. 쓰는 거는 한 달에 100만 원 쓴대요. 담뱃값만 해도 힘들다네요. 너무 절실했던 거죠. 돈 한 푼도. 범행할 때 통장 잔고가 8,500원이 있었어요. 어쨌든 아기 출산 준비도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너무 나가버린 거죠 사실은."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내 아이를 위해, 다른 아이를 유괴하자는 위험한 생각. 전현주는 나리를 유괴하고도 열흘동안 수사망을 피해 다녔어. 하지만 아버지의 신고로 정체가 밝혀진 거지. 형사들은 아버지를 붙잡고 딸의 행방을 캐물었어. 그런데 아버지도 모른대. 아무래도 딸이 범인인 거 같아 연락했는데, 답이 없더라는 거야. 불안한 마음에 아버진 전현주의 남편에게 연락을 했대. 그랬더니, 남편도 아내랑 연락이 안 된다는 거야. 알고 보니 며칠 전, 돈 문제로 부부싸움을 했는데 그 길로 아내가 집을 나간 뒤, 연락이 안 되고 있다는 거야.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만삭인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신고도 안 하고 기다린다고? 남편도 이상하지 않아? 공범인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야. 유괴 당일, 지방에서 아동극을 공연한 남편의 알리바이가 확인됐거든. 하지만 그래도 형사들은 여전히 공범의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 만삭의 임산부가 혼자서 애를 납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그런데 그때, 남편의 삐삐에 한 통의 음성메시지가 들어와. 맞아. 전현주였어. 그런데, 이 음성메시지를 확인한 형사들이 하얗게 질려.

"남편 이 씨의 삐삐 음성녹음. '나 죽을 거야, 내가 사실은 범인이 아니야. 누가 시켜서 한 거야'"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전현주가 목숨을 끊겠다고 선언한 거야. 그 여자가 죽으면 영영 나리를 못 찾아. 곧바로 발신지 역추적이 시작됐어. 그리고 지금 전현주가 신림동의 한 여관에 있다는 걸 확인했어. 나리가 유괴된 지 14일째인 오전 9시. 신림동 여관 앞뒤로 형사들이 쫙 깔렸어.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몇 명 있는지도 모르고. 일부는 뛰어내릴 수도 있으니까 차단을 하고, 그다음에 노크하고. '프론트입니다' 그러니까 문을 열었죠."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잠시 후, 끼이익 문이 열리더니 검은 원피스를 입은 초췌한 몰골의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 그 순간, 구 형사의 시선이 배로 향했어. 출산을 얼마 앞두지 않은 만삭의 몸이야. 드디어, 전현주를 찾았어.

"3명 정도가 들어간 거 같아요. 디스 담배 한 갑하고 농약병 하나 있더라고. 자결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검거를 했죠 거기서."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유괴 14일째, 용의자 전현주를 드디어 검거했어. 경찰서 앞에 기자들이 몰렸어. 전현주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해. 결국 형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전현주는 경찰서에 들어갔어.

▲ 드디어 찾은 나리

형사들이 그녀를 조사실로 데려가. 지금 나리가 어딨냐고 묻는데, 전현주가 죽어도 입을 안 열어. 형사들은 애원도 했다가, 협박도 했다가. 너도 애기 엄만데, 나리 엄마를 봐서라도 제발 어딨는지만 알려달라, 사정사정했어.

"제가 담배 많이 줬습니다. 밝혀내려고. 임산부를 저희들이 그렇게까지 추궁하고 이럴 부분은 아니고, 충분히 네 마음 안다, 설득하고, 회유하고."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동안 줄담배를 태우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어.

"사당동... 남편.... 사무실이요."

아동극을 하던 남편이 소품실로 쓰던 지하 창고야. 형사들은 곧바로 사당동으로 향했어. 도착해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계단을 내려가자 굳게 닫힌 철문 하나가 보여. 끼익 문을 여는데 완전 암흑이야. 랜턴 불빛을 비추자 그제야 내부가 보이는데, 느낌이 싸해. 여기저기 인형 탈들이 널려있고 바닥은 알 수 없는 액체로 흥건해. 그리고, 어지럽게 놓인 소품들 사이에서 뭔가가 눈에 띄어.

"골목길인데 지하였었어요. 문을 열고 딱 들어가는데 내가 미끄러질 뻔했어. 핏물 이런 게 흥건해가지고. 보니까 저 옆에 등산용 가방이 있더라고. 거기서 물이 샌 거야. 핏물이."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나리는 결국, 등산용 배낭 안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어. 학원을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 지 14일 만의 일이야. 나리가 무사히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길, 모두가 한마음으로 빌었는데. 나리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바다 같은 슬픔이 되어, 부모의 가슴을 적시며 그 속에 영원히 묻혔어.

▲ 유괴범의 공범 주장

나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그 시각. 취조실에선 형사들과 전현주의 실랑이가 한창이야.

"저는 몰라요. 그냥 그 남자들이 시켜서 한 것뿐이라니까요."

그 남자들이 시켰다는 게 무슨 말일까? 사실 전현주는, 검거 당시 손에 이런 걸 들고 있었어. 남편에게 쓴 편지야.

"일부러 명동 쪽으로 가자고 했어. 그래야 좀 덜 무서울 것 같아서.... 그랬더니 사ㅇㅇ 호텔을 아냐고 했어. 그래서 그렇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 뒤로 가면 SE라는 카페가 있댔어. 그러면서 거기 가서 종이에 적힌 대로 전화를 하랬어.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필름을 보여주면서 그걸 준댔어. 그래서 카페 2층에 가서 전화를 했어."

그녀의 주장은 이랬어. 보름 전, 웬 남자들이 집에 들이닥치더니 자신을 성폭행하고 사진을 찍었대. 그러면서 아이를 유괴해 돈을 받아 오면, 필름을 돌려주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거야. 이 말이 사실일까?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전현주는 피해자일 수도 있어. 근데... 좀 이상해. 조사를 하면 할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야.

"그 상황에 아주 극한 상황인데 내가 누구한테 사주를 받고 지시를 받았다 하면 당연히 대야 되는 거지... 그런데 '밝힐 수가 없습니다', '담배 한 개비만 주세요', '커피 한 잔만 주세요'.... 못 대지."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진범을 대라는 질문에, 입을 닫아버려. 그래서 형사들은 일단 전현주의 주변 인물을 조사하기로 했어. 왜 커피숍에서 형사들에게 강하게 항의했던 사람 기억나지? 후배 김 씨. 형사들은 제일 먼저 김 씨를 소환했어. 근데 김 씨는 공범이 아니었어. 나리가 유괴되던 날, 김 씨의 알리바이가 명확했거든.

"같이 어울리다가 집을 나왔다고 부부싸움을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저는 그냥 집에 들어가라고. 임신 8개월 차 아줌마가 뭐하냐. 근데 안 들어가겠대요."

-후배 김 씨

형사들이 다시 전현주를 추궁해.

형사: "너도 피해자라며. 그럼 너랑 나리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대야 우리가 도와줄 거 아냐, 어?"

전현주: "그 남자들이요... 나리를 죽일 때, 거기서 담배를 피웠어요."

담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나왔어. 실제로 범행 현장인 지하 창고에서 담배꽁초 12개비가 발견됐거든. 곧바로 DNA를 확인했지. 그런데, 12개비 모두, 100% 전현주 일치. 이건, 전현주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야.

"다 전현주 타액, 전현주 DNA만 나왔어요. 다 전현주가 혼자서 피운 거예요."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하지만 전현주는 여전히 공범을 주장해. 전현주는 나리를 유괴하자마자 학원 앞으로 온 남자들에게 나리를 넘겼다고 주장했어. 그런데, 나리가 납치되고 약 30분 뒤 한 은행 CCTV화면에 이런 장면이 찍혔어.

은행에 들어오는 나리와 전현주. 전현주를 따라 들어오면서 나리는 전현주가 돈 뽑는 동안 옆에서 해맑게 놀고 있어. 그리고 둘이 같이 나가는 모습이야. 분명 남자들이 나리를 데려갔다고 했는데 영상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

이건 전현주 집에서 찾아낸 수첩이야.

'물색(2시간)', '실행', '계좌개설'. 그리고 여기서 'C'는, 나리 엄마에게 카드를 가져오라고 했잖아? 그 카드를 의미하는 걸로 추정돼. 또 '숙소'라고 되어 있는데, 이건 남편의 극단 사무실 같아. 게다가 수첩 여기저기에서 '2천만 원'이라고 쓴 메모도 확인됐어.

모든 증거는 전현주의 단독범행을 가리키고 있어.

"CCTV 다 확인하고 동선 확인하고, 이 정도면 혼자 충분히 범행이 가능하다. 이거 단독범행이다. 결론을 내렸죠."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이제 그녀의 입에서 진실을 들어야 할 때야. 강 검사는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이 전현주가 지어낸 소설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어릴 때부터 글짓기를 잘했대요. 그러니까 그 글짓기를 잘하고 문예 창작반에 있었으면 얼마든지 논리적으로는 몰라도 감정적으로는 비슷하게 꾸며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계속 말을 하게 해서, 그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끄집어내서 심문을 하라. 이렇게 이제 전문가들이 얘기를 해주더라고. 그래서 계속 말을 시켰던 거죠."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계속 말을 시켜서 모순을 찾아내려고 한 거야. 검사는 계획대로 전현주에게 계속 말을 시켰어. 그렇게 신경전을 벌이길 몇 시간. 드디어, 전현주가 입을 열었어.

"맞아요.... 다... 제가 혼자 한 짓이에요."

마침내, 자백을 받아냈어. 지금부턴 전현주의 진술서를 토대로 그날의 진실을 되짚어 볼 거야.

▲ 그날의 진실

사건 당일인 8월 30일 오전 10시. 전현주는 서울 버스터미널 지하상가를 찾았어. 임부복을 사야 했거든. 하지만 주머니엔 15,000원이 전부야. 옷 한 벌 사기도 빠듯했어.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려는데 그때, 횡단보도 앞에서 한 아이를 만나게 돼. 하늘하늘한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예쁜 아이, 나리야.

"그때 나리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걸어왔습니다. 그러더니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껍질을 버리냐'고 물었더니 웃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휴지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나리가 '언니는 왜 휴지를 버리냐'고 물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데리고 가서 돈을 요구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현주 진술서 中

전현주는 붙임성 좋은 나리를 슈퍼에 데려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사줬다고 해. 잠시 후, 영어 학원에 가야 한다며 나리가 떠나자, 전현주는 영어학원으로 쫓아갔어. 거기서 있지도 않은 조카를 들먹이며 거짓으로 진학 상담까지 받았대. 그러면서 나리를 기다린 거야. 얼마나 지났을까. 수업을 마치고 나온 나리가 아는 체를 해.

"어머, 학원이 여기었어? 언니도 조카 상담 때문에 왔거든. 또 만나니 반갑다, 언니가 집에 데려다줄까?"

그렇게 나리는 전현주를 따라갔던 거야.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나리가 만으로 8살. 초등학교 2학년생이야. 그럼 학교에서 유괴 예방 교육도 받았을 테고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아무런 경계심 없이 전현주를 따라갔던 걸까? 전문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어.

"배가 8개월이면 많이 나왔을 거거든요. 임산부인 아주머니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건 되게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학원 선생님도 비슷한 맥락에서 뭔가 임산부가 학원까지 찾아와서 조카를 위해서 학원을 다니게 하려고 노력한다 라는 그런 것 때문에, 의구심을 안 가졌을 수도 있어요. 임산부라는 거, 여성이라는 거. 안타깝지만 범죄를 이행하는 범의를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굉장히 유리했을 거예요."

-김태경,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나리의 환심을 산 전현주는, 이번엔 놀이공원에 가자며 꼬드겼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가 3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캄캄해지자 나리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칭얼댔습니다. 그래서 수면제 두 알을 배고픈 데 먹는 약이라고 하고 먹였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도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리집에 전화를 하러 나가려고 하는데 나리가 다시 깨서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팔과 다리를 묶었습니다. 입에 청테이프도 붙였습니다. 나리가 잠꼬대 소리를 막 했습니다. 그래서 나리를 목 졸랐습니다. 정말이지 처음부터 죽이려는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닙니다."

-전현주 진술서 中

그렇게 죽일 생각만큼은 없었다고 주장하던 전현주. 하지만 나리는 유괴 당일 살해됐어. 그녀는 죽은 나리를 지하실에 혼자 둔 채 밖으로 나갔어. 이후 나리 엄마에게 돈을 요구한 거야. 그리고 다음날 밤 12시, 다시 지하실을 찾아와. 한 손엔 촛불을, 또 한 손엔 등산 가방을 든 채로.

"보통 남자들도 겁날 거 아니에요. 내가 죽였던 시체가 있고. 불이 안 들어오면. 보통 같으면 금방 못 들어갈 것 같은데, 촛불을 사서 촛불 켜고 그 작업을 했다고. 아마 그 당시에 등산 가방을 안고 한강 가서 버리거나 그럴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한 번은 검사가 전현주에게 이런 질문을 했대. 돈이 필요하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애를 밴 몸으로 어떻게 애를 유괴할 생각을 했냐고. 그랬더니, 전현주 대답이 가관이야.

"검사님, 이 몸으로 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강도짓을 하겠어요? 아님 은행을 털겠어요? 유괴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

범죄의 계획부터 실행, 체포 이후까지도 전현주는 자신이 임산부라는 걸 적극 이용했어. 힘들다며 미루는 통에 현장검증도 5일이 지나 겨우 할 수 있었다고 해.

형사들 부축 속에 걸어가고, 현장검증 인형도 제대로 못 쳐다봐. 지친 표정의 전현주는 눈물을 흘렸어. 그리고 실신했어. 전현주는 멀쩡히 잘 있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실신을 했다고 해. 전현주는 약취유인살해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됐어.

▲ 유괴범의 아이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0월 15일. 경찰병원 분만실로 한 여성이 실려와. 맞아, 전현주야. 구속 상태에 있는 임산부의 출산일이 다가오면 검사가 형집행정지를 내려 외부 병원에서 분만을 하도록 한대. 전현주는 15일간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어. 그리고 이날 2.79kg의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고 해.

한편 같은 시각. 여긴 또 다른 병원의 산후조리원이야. 한 남자가, 생후 2주 된 신생아를 품에 안고 재롱을 부리고 있어. 이 애기 아빠, 바로 이 분이야.

"전현주 출산하기 보름 전에 저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만큼은 제가 잊을 수가 없죠. 와이프한테 미안한 것도 많고. 한 20여 일 동안 집을 못 들어갔으니까."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타이밍 한번 얄궂지? 그러니까, 만삭의 유괴범 전현주를 수사할 당시에 구 형사님 아내 분은 임신 9개월 차였던 거야. 그동안엔 서에 살다시피 했지만, 이제 소홀했던 남편 노릇 좀 해야지 싶었는데. 또 삐삐가 울렸어. 보니까 역시나 '8282'야.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

"저희한테 요청을 해서 저희들이 가서 뭐 한 11일 정도 계속 근무를 했던 것 같아요. 외부인들 출입 금지시키고, 도망 못 가게 하고. 의경, 의무경찰들 이렇게 앞에 세우고 했던 것 같아. 누가 테러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출산한 전현주의 병실을 지키라는 지시야. 결국 구 형사는 갓 태어난 아들과 산후조리 중인 아내를 두고, 전현주의 수발을 들어야 했대. 그 와중에 전현주는 빵이 먹고 싶다는 둥, 별별 걸 다 요구했대.

어쨌든 출산을 마친 전현주는 형 집행 정지 기간인 15일이 끝나면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야 해. 그럼 전현주의 아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보통은 다른 가족에게 인계를 한대. 하지만, 상황이 안될 땐 아까 말한 대로 교도소에서 18개월 동안 엄마와 있다가, 시설에 맡겨지거나 입양을 간다고 해.

왜 기간이 18개월인 걸까? 일부 전문가들에 따르면, 18개월 무렵부터 기억력과 상상력이 발달한대. 또 활동도 많아지고 사회화 과정도 필요하니까. 그래서 아이를 위해 법적으로 18개월을 정해둔 거야.

"(일반적으로) 아기가 들어오면, 그 일반 수용자 방이 아닌 양육 유아방을 조금 더 크게 한 6평 정도 크기의 방에, 아기 엄마들을 따로 그 방에 모아서. 또 서로 도와가면서 아기 우유도 먹여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또 거기는 따뜻하게 온돌도 해주고. 그러다 보니까 훨씬 일반 수용실보다는 환경이 좋은 거죠."

-김응분, 전 교도관

출산을 한 부모들은 국가에서 양육 수당이란 걸 받아. 교도소 수용자도 마찬가지야. 그 수당으로 교도소에서 아이의 분유나 기저귀를 구매하게 해 준 거지. 또 국가에서 지정한 무료 예방접종도 도와주고, 소아과 진료도 해줘.

"예방접종이라든가 목욕시키는 것이라든가, 후에 또 약 먹이는 거. 뭐 이런 것들을 일일이 다 직원들이 입회해서 아기가 수용생활 동안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죠."

-김응분, 전 교도관

사실 엄마가 범죄자라고 해서, 아이에게까지 죄를 물을 순 없잖아. 전현주는 아이를 서울 구치소로 데려왔어.

▲ 유괴범의 진술 번복

그리고 한 달 뒤, 대한민국은 전현주로 인해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져.

"박초롱초롱빛나리 양을 유괴,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현주 피고인이 27일 열린 이 사건 첫 공판에서 또다시 '공범론'을 제기하면서 나리 양 살인 혐의까지 전면 부인해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전현주가 진술을 번복한 거야. 그 이유가 진짜 기가 막혀. 검사님 얘길 들어봐.

"전현주가 저보고 '사형선고가 나겠죠?' 그러는데 '당연히 이제까지 100% 사형이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감방에서 평생을 무기징역 받아 사는 것보다는 사형당하는 게 백 번 낫다고 생각했다, 밖에 있을 때는. 그런데 교도소 들어가 보니까 '아, 거기도 인간이 살만한 곳입디다' 이래요. 교도소에서 나중에 애 낳고 나서 혐의를 부인하더라고요. 온 죄수가 그냥 아기 보고 싶어서 난리가 나고 전쟁이 터지는 거야 막. 스타가 된 거야. 교도소 내에서. 삶의 생존 의지가 생겨버린 거죠. '내가 살아서 애를 키워야겠다'고 얘기하더라니까.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죠. 이게 남의 집 아이 죽여 놓고 자기 아기는 키우겠다고."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재판정에서 전현주는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재판 내내 공범 시나리오를 읊었어.

"재판에 들어갔더니, 내가 있는데도 내 눈을 안 봐요.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무조건 부인하더라고요. 아 괘씸하더라고. 자기가 그 큰 범죄를 저질러놓고, 갑자기 반성하는 것도 없이 '내가 죽인 게 아니다' 떳떳하게 나와버리니까."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심지어 2차 공판 땐, 나리 엄마가 방청석에 와 있는데도, 눈물까지 흘리며 열연을 펼쳤다고 해.

"키 큰 남자가 갑자기 칼을 들이댔어요. 난 죽고 싶지 않아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요."

-전현주

전현주는 최후진술까지도 '나는 결코 나리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어. 재판부도 전현주의 공범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살해만큼은 우발적으로 일어났고 전과가 없다는 점이 참작돼 최종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고 해.

어느덧 28년이 흘렀어. 20대 임산부였던 전현주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어. 무기수 전현주,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전현주가) 처음에 신입 교육을 받고는 이제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머리도 있고 일도 잘하고 하다 보니까, 그 작업장에서 봉사원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고. 워낙 또 조용한 성격이고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까. 존재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저는 잘 몰랐습니다. 일반 무기수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 징역을 살면 한두 번 정도는 귀휴를 나갈 수 있거든요. 근데 전현주는 한 번도 안 나간 걸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김응분, 전 교도관

교도소에서 전현주는 말수도 없이 정말 조용하게 지낸다고 해. 따로 사건 이야기를 전해 듣지 않으면, 유괴살인범인 줄 모를 정도래. 그녀는 진짜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는 걸까? 아니면, 오로지 본인만을 생각했던 그 마음 그대로, 지금도 가석방을 기대하며 지내는 걸까.

"(예전에는) 무기수도 16년이면, 가석방을 나갔었거든요. (요즘에는) 무기수들이 살아야 되는 기간도 많이 늘어났어요. 징벌을 하나라도 받으면 가석방을 내보낼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들은 가석방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수용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약취 유인, 성폭력 관계 범죄, 조직폭력 등 그런 범죄들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저희들이 가석방을 신청하기가 어렵습니다."

-김응분, 전 교도관

사실 '꼬꼬무' 제작진은 오늘 방송을 준비하면서 나리 아버님께 허락을 구했어. 아버님은, 더 이상 나리처럼 희생되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송을 허락해 주셨어. 자신의 아이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부모, 그리고 그 행복을 빼앗아 끝내 자신의 아이를 지켜낸 엄마.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기억한다'라고. 우린 언제쯤 잘못한 사람만 벌을 받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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