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병사 자폭이 상기시킨 여간첩의 자살

2025-02-11

우크라이나군에 체포될 위기에 처한 북한 병사가 “김정은 장군”이라고 소리치며 수류탄으로 자폭한 소식이 전해졌다. 사망한 북한군이 소지한 메모지에서는 ‘체포되기 전에 자살하라’는 명령이 발견되었다. 정보의 신뢰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지만, 북한 요원의 자살·자폭 감행은 대북 관련 업무를 수행한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96년 9월 강릉으로 침투했던 무장공비의 경우 26명 중 1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간첩을 비롯한 북한 요원들은 “청춘도 생명도 기꺼이 바치는 자폭 영웅이 되겠다”는 신념을 표한다.

우크라이나서 체포 위기에 자결

검거된 남파 요원의 행태와 흡사

북한에 인질로 남은 가족 살리려

1970년대 말 김정일이 “혁명가가 지조를 지키는 길은 자결뿐”이라고 강조한 이후 독약앰풀은 남파 간첩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1987년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가 바레인 공항에서 독약앰풀로 자살을 기도한 게 전형적 사례다.

정밀 수색했으나 은닉 앰풀 놓쳐

북한 간첩 수사과정에서 뼈아픈 사건이 벌어진 건 1997년 10월이다.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 조사실에서 여성 수사관들이 울산에서 압송한 28세 북한 여성 공작원 A씨의 신체와 소지품을 정밀 수색했다. 공작원 체포 시 가장 먼저 할 일은 독약앰풀을 찾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A씨가 소지한 립스틱과 볼펜 뚜껑에서 독약앰풀 3개를 찾아냈다. 한숨 돌린 수사진은 A씨에게 속옷과 트레이닝복을 제공했다.

조사가 시작되자 A씨는 “나는 조국통일사업을 위해 왔으며 김정일 장군님을 배신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진술을 거부했다. 밥도 물도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커피만 찾았다. 커피를 마시는 A씨에게 수사관이 “옆방에 있는 남자, 남편 맞아요?”라고 물었다. 부부 간첩이었다. A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없어요?”

“다섯 살 아들이 있습니다.”

“이름은?”

“○○이.”

여간첩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남편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그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속단할 수 없었기에 수사관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나이 든 수사관은 “엄마가 사는 게 아이를 돕는 길이야. 나중에 통일된 후 ○○이 만나면 되잖아”라며 설득했다. “아빠도 같이 왔으니 좀 좋아?” 옆에 있던 여자 수사관이 거든다. 그리고 30여 분, 눈을 감은 채 말이 없던 A씨가 또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안기부 선생님들은 모두 젊고 잘생겼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살짝 웃음까지 보이며 농담도 했다. 그렇게 그는 커피 여섯 잔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아침이 왔다. 피곤한 밤을 보낸 수사진은 세면장으로, 사무실로, 화장실로 오가느라 조사실이 어수선했다. A씨도 여자 수사관들과 함께 화장실과 세면장을 다녀왔다. 조사실에는 A씨와 남자 수사관 한 명만 남았다. 머리를 매만지는가 싶더니 찰나의 순간, A씨가 트레이닝복에서 뭔가를 꺼내 입으로 넣는다. 수사관 역시 찰나의 속도로 A씨의 손을 내려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사흘 뒤 사망했다. 수사관들이 신체검사 때 나름 철저히 수색했지만, 차마 뒤지지 못한 데서 허점이 생겼다. 28살 젊은 엄마 공작원은 그렇게 죽어갔다.

외국 스파이 자결 이유와 큰 차이

특수 임무를 부여받은 요원이 위기에 몰리면 자결을 택하는 일이 북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달 9일 이란 세안 감옥에서는 스파이 혐의로 구금된 스위스 국적의 남성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란과 스위스 간의 외교 관계에 미치는 파장은 지켜봐야 알겠지만, 스파이들이 활동 과정에서 느끼는 극도의 심리적 압박을 보여준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제 스파이 박물관에는 청산가리가 은닉된 만년필 한 자루가 전시되어 있다. 만년필은 1974년 스파이 알렉산드르 오고로드닉 요원을 위해 CIA가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오고로드닉은 소련 외무부의 중견 공무원이었다. 1973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소련의 억압적 체제에 실망을 느껴갈 무렵 CIA에 포섭됐다. 1974년 10월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 오고로드닉은 자신의 스파이 행위가 드러날 경우 KGB로부터 받을 고문이 걱정됐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오고로드닉은 CIA 핸들러에게 독약앰풀을 요청했다. CIA 지휘부는 오고로드닉이 체포되었을 때 겪게 될 정신적 고통을 피하도록 돕는 것이 오히려 인도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제작된 것이 만년필형 독약앰플이다.

모스크바로 귀환한 오고로드닉은 소련의 외교 정책과 관련된 민감한 정보를 미국에 계속 전달했다. CIA 이중 첩자에 의해 오고로드닉의 정체가 탄로 난 1977년 6월 22일 KGB가 오고로드닉의 집을 덮쳤다. KGB는 그를 체포했고, 증거물을 쓸어 갔다. 오고로드닉은 스파이 활동을 인정하는 자술서를 쓰겠다고 선수를 쳤다. 자술서는 평소 쓰던 만년필로 쓰고 싶다고 했다. KGB는 증거품에서 만년필을 찾아 그에게 건넸다. 만년필 뚜껑을 연 그는 한 치 망설임 없이 만년필 몸통을 깨물었다. 그의 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다. 오고로드닉은 그렇게 스파이 스트레스로부터 달아났다.

이 같은 해외 스파이의 자살과 북한 요원의 자결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발견된다. 외국의 경우 개인적 압박과 두려움이 주요 이유인 데 비해 북한 간첩은 북에 인질로 남아있는 가족이 겪을 불이익과 고통을 걱정한다. 북한은 인질 사회다. 북한에 인질로 잡혀 있는 가족이 없으면 파병 군인으로도, 대남공작원으로도, 외교관으로도, 외화벌이 일꾼으로도, 유학생으로도 해외에 나갈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내몰린 북한 병사들의 자폭도 이런 경우일 것이다.

체포 후 대처법 안 가르치는 북한

특히 북에 두고 온 자식을 염려하는 엄마의 자결 의지가 가장 무섭다. A씨가 자살한 며칠 뒤 함께 검거된 남편 B씨를 조사차 대면했다. 이미 자살용 앰풀도 다 뺏긴 상태였다. A씨의 죽음은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 수더분하고 착한 인상의 B씨는 함께 식사하는 동안 농담도 하고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했다. 아내의 죽음도 모른 채 검거 직후보다 다소 밝아진 그의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북한 간첩을 신문하다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체포된 이후 남한 당국의 신문이나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하라는 투쟁 계획이 없다. 오로지 자결·자살만 하라는 얘기다. 어느 국가든 자국 스파이에게 체포 시 심리적 압박을 견디는 방법과 해당 국가의 법적 권리 등을 철저히 교육한다. 냉전 시대의 소련도 그랬다. 북한만 다르다. 먼 이국땅에서 자폭을 서슴지 않는 북한 군인들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 그들의 가족 인질 수법을 절감한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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