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으로 사는 인생

2024-11-06

“왜 이 일을 하세요?”

정말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치과의사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차진료로서의 구강건강의 중요성을 외치는 일은 진료가 주된 치과의사와는 확연히 다른 삶이긴 합니다.

“사회의 주류로서 어떻게 사회공헌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어제 특강후 나온 질문입니다. 주류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미국에서 여느 이민 1세대와 같이 가족이 모두 함께 일해야 하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저는 등록금이 없어 휴학계를 내야 했던 날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아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막막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은 빛나는 순간들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간절했던 공부는 정말 달고, 재밌어서 밤새도록 교과서를 읽으며 지식을 갈망했던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제게 치과대학에 도전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가난과 질병은 절대 공존하면 안된다고 곱씹은 20대로 인해 일수도 있고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의사의 길은 너무나 멋지게 보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미국에서 치대로 들어가 공부하던 중 Paul Farmer 교수님을 만나, 사회의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의사들이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싸울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졸업 후, 미국 경제 위기 속에서 군의관으로 지원하게 되었고, 미국 보건부에서 보건 정책을 다루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은 저를 다시 학문의 길로 이끌었고, 군 장학금을 통해 보건정책학 석·박사 과정을 밟게 되었습니다.

이후 뉴욕 할렘 병원에서 일하며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습니다. 임산부 구강 건강을 위한 오랜 연구와 가이드라인이 있었지만, 할렘의 가난한 임산부들은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 맞는 모자 구강 보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동료 의사들과 함께 가이드라인의 중요성을 알렸습니다. 십대 임산부, 어린 환자들,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어머니들과 마주하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삶의 길을 안내하려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환자의 택시비를 내주어야 하고, 할렘의 어두운 거리에서 만난 환자의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제 아이도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은 시기였지만, 정신없는 날들 속에서도 제 마음은 늘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병원들은 문을 닫고, 저는 치과의사에서 코로나 병동의 긴급 인력으로 투입되었습니다. 매일 밤 시신이 냉동창고로 실려 나가고, 병실에서 오래 격리된 환자가 끝내는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제 삶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처음 가졌던 꿈,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던 열정은 어떤 식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 고민하였습니다. 얼마 후, 제 스승이었던 Paul Farmer 교수님이 르완다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현장으로 가야하겠어.” 그렇게 저는 서울로 돌아와 국제모자구강건강센터를 세우고 가난과 질병을 연구하는 소아치과 의사로, 개발도상국의 어머니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연구하고 강의하며 바쁜 하루를 보냅니다. 하이스피드 피스를 잡고 환자를 진료하시는 동료 교수님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불쑥 들 때도 있고, 성인이 되어 돌아온 한국 생활은 결코 쉽지 않지만, 내가 선택한 일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13번째로 다녀온 케냐에서는 특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이 물건을 훔치고, 대학생이 다리에서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석사 학위를 마쳐도 취업 확률은 20%도 되지 않는 현실, 경찰이 길을 막고 뇌물을 요구하는 상황, 마약에 빠진 절망한 젊은이들…구조화된 부패와 절망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정말로 세상이 바뀔까?”

그때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친구가 말했습니다. “신이 해결할 문제는 신께 맡기고,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계속.”

‘모험으로 사는 인생’ 제가 좋아하는 폴 트루니에의 책 제목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모험합니다. 안전한 길이든 도전 가득한 길이든 선택하고 결과를 마주합니다. 어쩌면 가장 모험적인 선택은 내가 선택한 일을 계속하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합니다. 진료실에서, 강의실에서, 현장에서 이 선택을 하시는 모든 치과 의료인에게 화이팅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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