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 중 특히 ‘문화를 이해하는’ 분으로 알려졌었다. 영화감상 등을 좋아했는데, 특히 영화 ‘서편제’에 크게 감동해 한동안은 뵐 때마다 이 영화 이야기를 했고 관례를 어기고 여주인공의 주례도 섰다. 대선 때 지인이 운영하는 관현악단에서 연주회를 한다기에 모시고 간 일이 있었다. 주최 측이 청중에게 소개해 박수도 받고 악수도 많이 나눴다. 연주가 끝난 후 자리를 떠날 때는 약단 관계자들이 모두 문 앞까지 전송을 해서 행사가 잘 마무리되려는데, 김 후보가 갑자기 뒤를 돌아 물어보는 질문에 모두가 놀라고 당혹스러워했다. 질문인즉슨, “연주는 잘 들었는데 그 악단 앞에서 막대기를 휘젓는 사람은 무얼 하는 것이여?”하는 것이었다. 어색한 상황에서 내가 얼떨결에 한마디 했다. “그것이 바로 정치지도자가 사회에서 하는 역할과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황당한 질문이 이어지지 않아 사태는 그것으로 마무리가 됐고, 다음날 뵙는 기회에 내가 아는 한 지휘자와 악단의 관계에 관해 간단한 설명을 해드렸는데, 이제 별 관심이 없는 듯 더 이상 질문은 없었다.
작은 정치는 개인·집단 이익 추구
큰 정치는 전체 공동체 위한 활동
어떤 정치를 해도 반대는 꼭 존재
공존을 위한 법과 질서 존중해야

어색한 상황에서 내가 한 대답은 즉석에서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전 동서 냉전 시절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전체주의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면서 이를 관현악단의 연주에 비교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관현악단과 지휘자의 관계가 전체주의 비판과 자유민주주의 설명에 적합한가 의문도 든다. 실은 모든 정치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폭정이고 아무리 정의로운 질서일지라도 여기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풀지 못한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정치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의사·변호사·목수… 사람이 종사하는 모든 영역에 전문가들이 있고 전문 지식도 있다. 그런데 막상 가장 중요한 정치에는 전문가가 없다. 따라서 정치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도 없다. 왜 그럴까. 그는 마침 당대 가장 현명한 현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그를 찾아가 물었다. 현인은 신화를 빌려 간단명료한 답을 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사람들에게 각기 생업에 필요한 기술을 주지만, 정치의 기술만은 특정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공평하게 나눠 준 것이란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대답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사람의 공동체에는 여왕벌이나 여왕개미 같은 존재는 없다. 정치가 전문인 특별한 가문도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이해관계나 생각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그 실현을 주장할 수 있고 실상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가장 큰 충격은 정치에 관한 전문지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에도 간혹 훌륭한 정치인이 있을지라도 그의 ‘전문적’ 지식은 다른 직종과는 달리 후손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당대 가장 유명한 정치인 페리클레스의 자손도 부친을 뒤이어 훌륭한 정치인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계속 노력하였다. 그의 제자 플라톤이 정리한 대로 ‘철인왕’, ‘정치인’ 그리고 ‘법’에 의한 정치를 논했다. 그러다 최후를 맞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Πολιτικ?)’라는 말이 처음 사용됐을 때는, 이 말이 큰 정치, 즉 공동체인 도시국가의 일에 관한 활동을 의미했다고 한다. 아직도 큰 정치를 하는 것은 훌륭하고, 작은 정치를 하는 것은 비천한 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분들은 거의 자기 자신이 공동체 전체를 위한 큰 정치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 정치 혹은 정치인이라는 말은, 이와는 달리 자기 집단 혹은 자기 자신의 권력과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어떤 정치학자의 말대로 정치란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획득하는가(Who Gets What, When, How)” 하는 문제다. 말하자면 작은 정치다. 오늘날 유일하게 큰 정치인에 가까운 것은 아마 실제 권력이 없는 입헌군주국의 군주뿐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물론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은 공동체 전체를 위해 권력을 추구하고 행사한다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은 집단 밖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회의 구성이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자연히 부분적 혹은 개인적 이해관계의 추구 즉, 작은 정치를 어떻게 공동체 전체를 위한 큰 정치로 이어지게 할 건가가 정치의 중요한 문제가 된다. 큰 정치가 때로는 국경을 넘어 세계와 인류를 시계에 둘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정치도 한없이 작아져 자기가 속한 집단보다 자기 자신에만 집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큰 정치라고 반드시 훌륭한 것은 아닌 것처럼 작은 정치라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큰 정치는 작은 정치들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큰 정치인은 없다. 단지 큰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게 하는 법과 질서, 즉 헌정이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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