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이 실학자가 아니라고? 방대한 사료로 진면목 추적한 평전[BOOK]

2025-11-14

홍대용 평전 1,2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이 책만큼 머리말부터 혼란스러웠던 책은 또 없었던 것 같다. 두 권, 1400쪽이 넘는 방대한 양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다 아는 홍대용이 실학자가 아니라니. 지구자전설과 우주무한론을 펼친 과학자가 아니라 그저 주자에 대한 맹신을 비판한 실천적 정주학자에 불과했다니. 아무리 위인전 아닌 평전이라 해도 홍대용에게 잘못 입혀진 옷을 벗겨내려고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는 16년 전 원고 집필을 시작해 원고지 4500매를 썼고 새로운 사료가 드러나 1000매를 추가했다고 한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서양과학으로 무장한 실옹으로 등장해 조선의 헛똑똑이 지식인인 허자를 꾸짖는다. 무한한 우주에 한낱 지구가 있을 뿐이며 지구는 둥글고 자전한다고 설파한다. 오늘날 지식으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240여년 전 조선에서는 대단한 통찰이 아닐 수 없을진대 저자는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서양의 천문학과 지구자연학을 정주학의 지평에서 수용하려 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것은 태양이 항성인 서양의 지동설과는 맥락과 내용에서 판이한 데도 비슷하거나 같은 것으로 “착각하도록 방치됐다”는 주장이다.

홍대용이 화이론(華夷論)을 부정한 것도 통설인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을 부정함으로써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보다 자신의 중국인 벗들을 오랑캐 조정에서 벼슬하려는 비루한 인간들로 폄하하는 비판의 대응논리였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가 천착한 홍대용의 개인사 속에 “민족의 주체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없다.”

홍대용을 발굴해 스타로 만든 이들은 일제시대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정인보와 안재홍이다. 민족적 자부심, 민족의 주체성 확립이 절실했던 그들이 지구가 돌고, 내가 있는 곳이 중심이라는 홍대용에게 열광한 것은 이해가 어렵지 않다. 그래서 홍대용의 “텍스트들이 뜯겨나와 편집됐고 재구성된 텍스트에서 독해된 홍대용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이러한 결론이 홍대용을 부정하고자 함은 물론 아니다. 필요에 따라 가감된 평가 말고, 있는 그대로의 홍대용을 살펴보자는 게 편집만 3년 걸렸다는 이 책의 목적이다.

사실 홍대용 생전에 실학이란 용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실학이란 말이 등장한 때는 일제시대이며, 실학의 수퍼스타 정약용의 책들도 필사본으로 지인들끼리만 돌려봤을 뿐 인쇄본 『여유당전서』가 나온 건 1938년이다. 홍대용의 글을 모은 『담헌서』도 1939년에서야 간행됐다. 다른 실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홍대용이 당대 사회에 미친 영향은 제로에 가깝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그들의 혜안과 통찰이 빛을 잃는 것은 아니지만, 부풀려진 것을 바로잡고 그 한계를 직시하게 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다. 거품으로는 역사라는 요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반론도 기대하며 그렇게 해서 보다 완전한 역사가 쓰여지길 기대할 따름이다. 과장과 칭송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네 전기 출판 문화에 방대한 자료와 깊은 고찰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평전의 모범을 보인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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