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겐 국경이 의미 없는 이유···“의사가 있어야 할 곳은 ‘환자 곁’”

2024-10-20

“한국에서 전쟁이 터져 많은 사람이 다쳤어요. 그런데 다른 나라들이 모두 ‘한국은 분쟁 지역이라 위험하니 의료진이나 구호 인력을 보내선 안 돼’라고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만리타국, 오지는 물론 분쟁지역까지 가서 의료지원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정의 활동가(51)는 이렇게 답했다. “빈국이나, 분쟁지역일수록 신체와 정신에 위해를 당할 우려가 크고, 그에 반해 의료 인프라는 더 열악하기 십상”이라며 “의료 지원이 가장 필요한 곳이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16일 ‘국경없는의사회’(MSF)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정 활동가를 만났다. 정 활동가는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MSF 소속 13년 차 베테랑 활동가이다. 지난 2011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첫 지원 활동에 나선 이후 지금까지 코트디부아르, 시에라리온, 파키스탄, 차드 등에서 6번의 활동을 수행했다. 매번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을 현지에서 보냈다. “한국에선 절대로 볼 수 없는 환자들을 매일 봅니다. 유산한 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까무러친 뒤에야 온 산모도 있었어요. 수술을 해보니 배 속의 아이 시신은 썩어 있었고, 자궁은 파열돼 뱃속에 피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활동은 단지 진료 지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MSF의 최종 목표는 현지에 의료 체계를 세워주는 것이다. 현지에서 건물을 구하고, 의료인력이나 행정인력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국제 의료 프로토콜을 전수한다. 그들 스스로 운영이 가능해지는 수준에 도달하면 의사회는 프로젝트를 그들에게 넘기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일련의 과정에 드는 인건비나 임대료, 장비나 약품 구입비 등은 모두 의사회가 댄다. 재원은 세계 각지에서 모이는 후원금이다.

“저희가 활동하는 국가들에선 대부분 아이를 많이 낳아요. 출산을 10번 이상 하는 산모도 종종 봅니다. 모두 집에서 낳아요. 병원은 죽을 지경이 돼서야 옵니다. 병원이 없으니까요. 병원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결국 달라지는 건 없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 MSF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정 활동가는 말한다. “식량이나 생필품 구호도 중요하죠. 그래서 여러 기구나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 체계 구축의 경우 MSF를 비롯해 일부 의료전문 구호단체만이 가능해요. 의료 지원을 하고 싶어도 현지 당국과의 협의나 MOU 체결, 인력 채용이나 교육, 고용 계약 등에 관한 노하우가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가 활동에 사명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사명감에 차 있었던 건 아니다. “2000년대 초쯤 한 대학병원에서 일할 때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졌어요. 새로운 활력소나 찾아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MSF에 지원했어요. 막상 떠날 때가 되니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8년 뒤 그는 다시 도전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 활동가 중에선 손에 꼽히는 베테랑이 됐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제왕절개’는 출산을 돕는 서비스의 성격이 강해요. ‘새 가족의 탄생을 돕는다’는 것도 물론 보람찹니다. 하지만 저희가 활동하는 곳에선 ‘생명을 살리는 수술’이에요. 제왕절개 수술을 하지 않고서는 산모도 아이도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발생해요. 병원이 널려있는 한국과 달리, 그들에게 수술을 해줄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의 진정한 가치와 보람을 느끼는 것’, 그건 중독성이 무척이나 강한 ‘기쁨’이더라고요.”

그는 개인적으론 한국의 ‘여행금지제도’의 완화도 바란다고 했다 “제도의 취지는 이해합니다. 그래도 인도주의적인 목적에 한해서라도 분쟁지역에 대한 접근을 허가해주면 좋겠어요. 만약 한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다른 나라에서 분쟁지역이라는 이유로 외면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참된 보람’이 국경을 넘어, 위험마저도 감수할 정도의 이유가 될 수 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의사가 있어야 할 곳은 ‘의사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환자의 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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