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승려가 조각한 보살상, 튤립의 나라에 가다

2024-07-04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2024년 7월부터 26년 5월까지 약 2년 동안 네덜란드국립박물관(Stichting Het Rijksmuseum, 관장 Taco Dibbits) 아시아관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인 <목조관음보살상>을 특별 전시한다. 이번 특별공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나라 밖 한국실 지원사업의 하나로, 네덜란드에서 진행하는 첫 번째 사업이다.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을 소장한 네덜란드 대표 박물관

암스테르담에 있는 네덜란드국립박물관은 ‘라익스박물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반 고흐 등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유한 네덜란드 그림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약 100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렘브란트의 <야간 순찰대>,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등의 대표작에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관람객의 발길이 언제나 끊이지 않는다. (*2023년 기준 270만명 관람객 방문)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유럽 으뜸 박물관임에도, 한국 문화 전시 공간은 상대적으로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네덜란드에서 한국 문화유산을 알리고,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두 박물관은 지난 2년 동안 네덜란드국립박물관에서 동아시아 문화를 균형있는 시각으로 보여주고자 중국과 일본 불상만 있는 아시아관에 조선시대 불상을 전시하기 위해 협의해 왔다. 2023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과 네덜란드국립박물관은 두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기관으로서, 전시품 대여와 한국코너 개편 지원 등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실 지원 사업으로 네덜란드국립박물관과 진행하는 첫 번째 결실이다.

나라 밖 한국실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네덜란드에 가다

네덜란드국립박물관이 암스테르담으로 본격 초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은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진‘목조관음보살상’이다. 관음보살은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보고 듣는다는 데서 유래한 자비의 화신이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손에는 연꽃을 든 이 상은, ‘조선의 승려 장인’ 특별전(2021년)에도 출품된 바 있다. 조선시대는 ‘승려 장인(匠人)의 시대’라고도 부를 수 있을 만큼, 수행승이면서 전문능력을 지닌 조각가가 활동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이 끝나고 사회의 기반 시설이 폐허가 되었을 때, 궁궐과 도성을 재건하는데 앞장섰던 승려들 가운데는 불상을 조각하거나 불화를 그렸던 수많은 장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상을 조각한 승려의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표정, 양어깨에 드리운 머리카락이나 구불구불한 옷 주름 등의 독특한 표현 방식에서 조각승 진열(進悅)의 작품으로 보인다. 진열은 1700년대 중반에서 1720년대 전반까지 수조각승으로 활동했으며, 부산 범어사 관음전 관음보살상의 작가기도 하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승려가 직접 상을 만들었던 조선시대 조각승의 존재를 통해 종교의 영역이자, 예술의 영역으로서 불상이 제작되는 과정을 더욱 생생하게 떠올려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가 밝혀낸 목조 보살상의 제작 과정

꽃을 든 이 보살상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보존과학부는 전시품을 보존 처리하던 중, 보관(寶冠)의 장식이 본래의 것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별전 준비팀과 입수 당시의 자료와 양식적 특징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면서 후대에 잘못 결합한 부분을 찾아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불상의 컴퓨터 단층 촬영(CT)으로 상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몸체와 대퇴부 이하 무릎 부분의 목재는 따로 조각해 접목하고, 몸통과 연결할 때는 ㄷ자 모양의 거멀쇠*(부재를 연결할 때 쓰는 철물)를 사용했음을 알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편안한 인상을 주는 이 상은 조선 후기에 승려 장인들이 활발히 활동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불교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조선시대 목조상은 두 손과 머리에 쓰는 보관, 손에 든 연꽃을 별도로 조각해 끼우므로 제작 당시의 것이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 이 상은 승려 조각가가 만들었을 당시의 원형을 잃지 않고 있어 더욱 의미가 크다.

승려 장인이 정성을 다해 조각한 ‘꽃을 든 보살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떠나 앞으로 2년 동안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세계인을 만나는 여정을 시작한다. 작지만 강한 나라로 알려진 네덜란드는 유럽의 대표적 중계무역지이며, 비영어국가 가운데 영어구사능력이 가장 뛰어난 국가로 세계인을 향한 개방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7세기 조선의 생활상을 유럽에 처음 소개했던 하멜의 나라이기도 한 이곳 네덜란드에서 조선의 불상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중요한 문화 사절이 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앞으로도 한국실 지원 사업과 우리문화재 나라 밖 전시 등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다양한 문화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적극 이어가고자 한다. 현재 네덜란드국립박물관 정원에서는 한국 현대 작가인 이우환 작가의 전시도 함께 이어지고 있다. 시간의 경계를 넘어 전통과 현대 모두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새 바람이 암스테르담에 더 멀리 퍼져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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