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면, 선생님은 모두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급식비를 내기 어려운 학생은 손을 들라 했다. 망설일 틈은 없었다. 일단 손을 들고, 올라오는 감정을 마주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들켰을 때의 당혹감과 진실을 말할 때의 시원함, 창피함과 고마움이 어지럽게 소용돌이쳤다. 모두가 눈을 감았지만 누가 급식비 지원을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무상급식이 시행됐다. 나에게 사회대개혁은 떨리는 마음으로 올렸던 팔을 내리게 해주는 것이었다.
무상급식을 이야기하면 ‘공짜 점심은 없다’는 식상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세금이 들어가니 결국 국민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뜻이다. 모두가 안다. 부모의 소득에 따라 학교에서 먹는 밥과 반찬이 달라지지 않도록 십시일반 비용을 분담하자는 제안에 국민 다수가 동의한 것이 무상급식이다. 우리가 몰랐던 무상급식의 진짜 비밀은 공짜 점심이 아니라 공짜 노동으로 밥이 지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2025년 시민이 뽑은 최악의 살인기업 1위로 ‘시도교육청’이 선정됐다. 2021년 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사망 이후 214명이 폐암 산재 신청을 했고, 그중 13명이 사망했다. 폐암 원인으로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인 조리흄이 지목됐다. 노동자들은 급식실 환기 시설을 개선하고, 연 1회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암을 추적관리할 수 있는 건강관리카드 발급 대상에 조리흄을 포함하라고 주장했지만 국가는 외면했다.
문제는 폐암만이 아니다. 야채절단기에 손가락이, 고추분쇄기에 손목이 잘리고 휴게실의 장이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되는 일들이 벌어졌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맛있는 급식이 제공됐다. 도서관 사서, 과학실무사, 특수교육지도사는 학교에서 일하는 공무직 노동자지만 현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일부만 적용된다. 국가가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고 학교를 죽음의 공장으로 만들자 인력을 구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지난해 4월26일에는 서울 서초구 소재 중학교에서 급식노동자 2명이 1000명 넘는 학생의 급식을 만드는 일까지 발생했다.
학교는 노동자 대신 로봇의 안위를 살폈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임병순 조합원은 “10년 넘게 일해도 노동자 안부는 단 한 번도 묻지 않던 교장이 매일 로봇은 잘 있냐며 급식실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고 했다. 2023년 기준 급식실 환기 시설 개선이 시행된 학교는 42.81%에 불과하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일에는 예산을 아끼고, 사람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비효율적 로봇을 위해 예산을 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정인용 본부장,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민태호 위원장, 전국여성노조 최순임 위원장이 지난 21일부터 곡기를 끊었다. 윤석열은 파면됐지만 변하지 않는 학교의 현실을 보고 밥이 넘어가지 않았을 테다.
급식비 지원을 받기 위해 쭈뼛쭈뼛 올렸던 팔 덕분에 굶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나 같은 학생의 팔이 부끄럽지 않도록 시민들이 함께 손을 들어 무상급식이 도입됐다. 그런데 정작 밥을 만드는 노동자가 굶고 있다. 교육공무직 노동자가 들어 올린 당당한 팔뚝질에 시민들이 함께 손을 들어주시길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