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 ‘불혹(不惑)’이 훌쩍 지났는데 여전히 이것저것에 혹한다. ‘강남 부동산 오른다’는 뉴스를 보며, 우리 부부가 ‘영끌’해 마련한 경기 부천의 아파트값도 올랐나 부동산 앱을 켜본다. 각종 학원 전단에 혹해 ‘큰아이 학원 어디를 보내야 할까’ 고민하고, 강남의 부자들은 자녀를 한 달에 수백만원이 드는 영유(영어 유치원)에 보낸다는 기사에 혹해 ‘우리 둘째는 영유가 아니더라도 원어민 있는 영어학원에는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자동차 계급 피라미드’에서 우리 집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밑에서 두 번째에 있는 것을 보면서 ‘한 단계 더 높은 차를 구매해 ‘품위’를 유지해야 하나’ 잠시 흔들리기도 한다. 10년 전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소비 주체인 40대’를 겨냥해 만들어진 조어 ‘영포티’는 이렇게 미혹당하는 나 같은 40대를 간파하고 나온 단어가 아닐까.
그런 단어를 이제 2030은 ‘포티들’을 놀리기 위해 사용한다. 나와 동료가 만난 19명의 2030은 본인들의 파편적인 경험을 얘기하며 “젊지 않은데 젊은 척하는 중년 남성”, “젊은 여성에게 어필한다고 믿는 자의식 과잉의 40대 남성”,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꽉 막힌 꼰대” 등으로 영포티를 정의했다. 돈(비싼 브랜드)으로 젊음을 사고, 자신을 증명하려는 중년들이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역겹기도 하다”고 이들은 말했다. ‘토론의 즐거움’ 대표 정주식은 주간경향 칼럼에서 “우스꽝스럽다는 걸 본인들만 의식하지 못하는 거대한 인구학적 집단이 있고, 그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소비사회의 욕망이 있다”고 지적했다. ‘영포티’는 소비로 자신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중년의 빈곤함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다.
‘영포티’란 조롱은 분명 세대 혐오에 가깝고 갈등을 조장하는 말이지만, 중년의 또래에게는 이런 당부를 하고 싶다. 2030들이 왜 이런 단어를 쓰는지 좀더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인터뷰한 2030이 원하는 40대의 모습은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어른, 책임, 존경, 귀감, 성숙, 품격, 경청, 협력.
나는 이 키워드에 얼마나 가까운가. 조직의 젊은 ‘어른’으로서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은 무엇이고, 어떻게 후배들과 ‘협력’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오늘도 흔들린다. 이 후드티를 입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스냅백 모자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영포티로 보이진 않을지…. 자꾸 미혹 당하는 건 내 빈곤함 때문이다.






![[에듀플러스][유학에서 정주로]③“한글 굽는 외국인 창업자 타일러·니디, 한국 정주의 길을 말하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11/11/news-p.v1.20251111.2a649488c392402ab0a585e83b3cf8ec_P1.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