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기는데 짠하고 아름다운데 눈물이 난다. 넷플릭스의 16부작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 연출 김원석) 말이다.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란 뜻의 제주 방언에서 온 제목에서 엿보이듯 대체적인 배경은 궁핍한 제주 어촌이다. 지난 7일부터 매주 금요일 4편씩 4주에 걸쳐 공개되는데, 인생의 사계절이란 의미도 있단다. 풋풋한 소년·소녀의 첫사랑을 1~4화의 ‘봄’에 담았으니 이제 부부가 자녀를 키우며 뜨겁게 헤쳐갈 인생 험로가 ‘여름’이 될 것이다. 16부작이 1960년대부터 2025년까지 70년 세월을 아우른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니 사실상 대한민국의 성장사와 맞물린다.

지난해 하반기 tvN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부터 60년대까지 당대의 인기 장르였던 여성국극을 소재로 청춘들의 꿈과 도전을 그렸다. 지난해 상반기 MBC의 ‘수사반장 1958’은 1970~80년대 인기작이었던 ‘수사반장’ 속 박영한 반장(최불암)의 청년 시절 분투기를 담았다.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16부작 ‘삼식이 삼촌’ 역시 1950년대 후반~60년대가 배경이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시대를 다룬 드라마가 이어지는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묘하게도, 궁핍하고 어지러웠던 그 시대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 삶의 뿌리를 되짚게 된다.
지금 보면 쓴웃음이 난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반장선거 투표 결과를 뒤집는 담임교사의 책상엔 3·15 부정선거를 보도하는 신문이 펼쳐져 있다. 미니스커트가 경찰의 단속대상이고 통행금지 사이렌과 함께 ‘부녀자 가출 방지기간’ 플래카드가 나부끼던 시절이다. 학교를 마치는 게 소원이지만 현실은 ‘공순이’가 되거나 식모살이하며 가족 부양을 해야 했다. “부산 인심 쥑임니더” 하면서 실제론 등쳐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돌파한 1995년 이후 ‘선진국’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의 눈엔 일제강점기만큼이나 낯선 옛날일 거다. 그렇게들 좌충우돌하면서 미래를 꿈꿨다. 민주주의만 피를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경제발전도 피땀을 먹고 자랐다.
최근 읽은 『여사장의 탄생』(김미선 지음)에선 정년이 같고 애순이 같은 여성들이 경제 주체로 거듭나게 된 과정을 되짚는데, 결정적 계기가 한국전쟁이었다. 전쟁터로 떠난 남성을 대신해 여성들은 생계 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기 센, 드센, 나대는’ 같은 소리 들어가며 자식에게만은 빈곤 대신 풍요를 물려주려 했다. 그런데도 금명이(아이유, 1인 2역)는 “엄마가 회사 생활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라며 못 배운 사람 취급한다. 미국 젊은이들이 ‘꼰대’라는 의미로 베이비부머를 줄인 ‘부머(boomer)’를 쓴다는데, 전후세대를 그렇게 단편화하기엔 우리가 빚진 게 많다. 드라마 한 편으로 세대 통합을 이룰 순 없겠지만, 늦기 전에 들려드려야 할 말이다. “폭싹 속았수다(매우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