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는 코미디, 더 웃기는 현실

2025-03-06

어떤 현실은 그저 그대로 흉내만 내도 위로가 된다. 미국의 생방송 코미디 쇼 SNL은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이 끝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를 재현했다. 젤렌스키에게 “스타트렉 같은 캐주얼한 옷을 입고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던 트럼프가 중간에 “백악관에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다니, 청소부인가?”라며 심통을 부린다. 갑자기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채 전기톱을 들고 ‘일론 머스크’가 등장해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영화 ‘오스틴 파워’에서 독재자를 연기했던 마이크 마이어스다. 유튜브에는 “SNL은 작가가 필요 없다” “현실보다 훨씬 순한 맛이다”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회담 때 모욕감을 느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렇게라도 위로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댓글도 많이 달았다.

코미디 같은 현실의 패러디 화제

흉내의 유희 넘어 새로운 트렌드

특정 1인서 캐릭터 모사로 진화

어떤 코미디는 미래의 현실까지도 모사한다. 계엄사태가 벌어지자, 2003년 최양락 등이 출연했던 ‘역사뉴스’가 유튜브에서 소환됐다. 연산군이 술병을 들고나와 경고 성명이라며 계엄을 발표하고, 시위하는 ‘불순 역모 세력’을 잡아넣겠다고 외친다. 그러나 결국 반역 세력에게 곧 체포된다. 23년을 기다려 현실이 코미디에 일치하기 위해 달려온 것인가라는 씁슬한 탄식이 터진다. “개콘 보는 것 같다”는 말이 현실에서 나오는 순간, 현실은 별다른 해석 없이 흉내만 내도 한 편의 코미디로 변신해버린다. 현실이 코미디 같을수록, 코미디는 더 쉬워지는 것이다.

이수지의 ‘대치맘’ 패러디가 화제다. 무엇이든 극도로 정교한 수준에 이르면 ‘예술’이라 불린다. 그의 패러디가 ‘대치맘’이라는 특정 여성 집단을 조롱한 것이냐,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코미디는 그 자체로 감상의 가치가 있다. 그는 ‘징그러울 정도로’ 현실을 모사하는데, 그 속에 담긴 현실이 그만큼 웃기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든, 극성 엄마든, 우리가 평소에 그렇게 우습게 살고 있다는 걸 거울처럼 비춰주며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어차피 패러디 코미디는 풍자와 조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 수준의 예술은 자연스럽게 의미를 발산하며, 보는 이에 따라 해석도 달라진다. 그의 콘텐트가 하나둘씩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패러디 예술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평가받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유튜브’ ‘여성’ 그리고 ‘모사 코미디의 변화’다. 성대모사는 오래전부터 코미디언들의 필수 기술이었다. 안윤상과 정성호 등은 ‘모사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성대모사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수지, 주현영, 강유미 등이 보여주는 모사의 대상은 특정한 1인이 아니라 ‘캐릭터’다. 특정한 사회적 맥락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을 가져와, 그들이 할 법한 말과 행동을 상상력으로 펼쳐 보이며 공감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인턴 기자 주현영’ ‘대치맘’, 혹은 ‘인플루언서 이수지’는 누구나 주변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인물들이다. 단순한 흉내의 유희를 넘어, 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코미디 트렌드를 이들은 만들고 있다.

이 분야의 선구자로는 2015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온갖 분야의 인간 군상을 모사하며 ‘코미디 인류학자’로 불리는 강유미가 있다. 이들의 코미디는 인간에 대한 지독한 관찰력, 특정 인물의 머릿속에 빙의해 “이럴 때 이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를 상상하는 공감 능력과 창의력, 그리고 이를 한치도 다르지 않게 재현하는 연기력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이런 형태의 코미디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열리면서 가능해진 장르다. TV 코미디는 오랜 시간 ‘크게 웃기기’를 목표로 했다. 과장된 연기, 고정된 캐릭터, 빠른 진행, 리액션이 필수였다. 그러나 유튜브는 다르다. 여성 코미디언들의 극사실주의적 코미디는 개인적이고 작은 화면에서 섬세한 연기와 디테일한 유머로 더 강한 몰입을 유도한다. 시청자들은 1:1로 영상을 보며, 작은 표정 변화나 미세한 말투 차이까지 섬세하게 감지할 수 있다. 이 덕분에 모사 코미디언들은 과장된 패러디 대신 더 정교한 모사와 연기로 승부를 볼 수 있다.

강유미의 유튜브 채널이 대표적이다. 그는 유튜브 특유의 포맷인 ‘ASMR’을 활용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흉내 내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큰 무대가 필요 없는 모사 코미디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순간이다. 최근 선보인 영화 ‘서브스턴스’ 패러디물 ‘유미스턴스’는 젊어지려는 강박을 가진 현대 사회를 풍자한 수작이다. 쓴웃음을 자아내는 현실과 영화의 변주, 그리고 한우 PPL 광고까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다. 패러디 코미디가 한 ‘경지’에 오르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단번에 보여주는 사례다. 섬세한 눈길과 묘사력을 가진 여성 유튜브 코미디에 더 큰 기대를 하게 된다.

이윤정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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