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플라워쇼에서

2025-04-01

마음이 불편했지만 산불 소식을 등지고 호주로 향했다. 호주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멜버른 플라워쇼다. 매년 3월 마지막 주, 국제플라워쇼가 개최되는데 남반구 최대 규모의 정원쇼다. 행사장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칼톤가든으로 1800년대 박람회 개최를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건물과 바깥 정원에서 플라워쇼가 열린다.

인파를 예상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들어서자마자 너른 정원을 가득 채운 사업체들의 부스가 보였다. 각각의 부스에서는 정원에 필요한 도구·용품들이 눈길을 자극하고, 건물 안에서도 정원생활자를 유혹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그간 수많은 국제 플라워쇼를 찾아다녔지만 이번 멜버른 플라워쇼는 매우 신선했다. 그 이유는 바로 플라워쇼의 주인공이 ‘호주 자생식물’이기 때문이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식물은 매우 다르다. 고생대 때에는 아프리카·아메리카·호주가 하나의 판으로 붙어 있었다. 그래서 원래는 같았던 식물이지만 서로 멀어져 다른 기후에 적응하며 그 모습이 매우 달라지게 된다.

호주 식물의 특징은 ‘가뭄에 적응한 식물’이라는 점이다. 잎은 가늘고 좁아진 데다 가시가 생겨나고, 가죽처럼 빳빳하고 두툼해졌다. 몸통이 병 모양으로 부풀고, 키 낮은 덤불의 형태로도 바뀌었다. 물을 최소한으로 쓰고, 저장하기 위함이었다.

식물들에겐 가뭄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다. 죽음의 기후를 이겨내고 끝내 살아남은 호주의 식물들. 유칼립투스·캥거루의발톱·뱅크샤…. 낯설지만 아름다운 자생식물이 가득했다. 강해서 살아남고, 풍요로워 강해진 것이 아니라, 죽을 만큼 힘들게 살아내었기에 아름답고, 강해졌다.

플라워쇼에서 돌아오니 이제야 산불이 진화된 듯싶다. 산불은 꺼졌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갈런지. 다시 또 살아남아 강하고 아름다워지자고 응원을 보낸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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