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수 특별기고] 또럼 국빈 만찬장에서 되돌아본 한-베 30년

2025-08-12

지난 8월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베트남 당 서기장 또럼(Tô Lâm)의 방한을 기념하는 이재명 대통령 주최 국빈 만찬에 참석했다. 한-베트남 수교 30여 년의 발자취를 함께 걸어온 사람으로서, 이날의 만찬장은 양국 관계의 깊이와 넓이를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행사에는 베트남 정부 고위 인사들과 주요 경제계 인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국 측에서도 핵심 부처 장관들과 재계 총수들이 함께했다. 격조 높은 의전 속에서도 분위기는 유난히 따뜻했다. 서로의 눈빛과 웃음 속에 오랜 신뢰와 우정이 묻어났고, 대화는 진심과 호의로 채워졌다.

특히 건배 제의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건배사를 베트남어로 외쳤다. “쭉쓱쾌(Chúc sức khoẻ)!”—“건강을 위하여”라는 뜻의 이 말은, 그의 구수한 발음과 함께 만찬장에 웃음과 박수를 불러일으켰다. 베트남 참석자들은 기분 좋은 놀라움 속에 잔을 부딪쳤고, 한국 참석자들 역시 그 순간을 함께 즐기며 한층 가까워진 분위기를 느꼈다.

각 테이블에 배치된 통역사들의 활약도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는 부산외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한 제자도 있었다. 과거 부산외대에서 유학한 베트남 출신 인재도 있었다. 그들이 양국 정상과 고위 인사들의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교육 현장에서 길러낸 인재들이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현실이 무척 뿌듯했다.

오늘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교수님, 오늘 청와대 만찬 통역을 하였는데요. 저희가 참석 인사 관련 자료를 현장에서 받기 때문에, 통역이 끝난 뒤 집에 귀가하고 나서야 받았던 자료에 교수님이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통역 일을 하고 있는 도중에, 인사를 드릴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교수님이 계셨다는 것을 알고는, 잠시나마 인사를 드렸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정말 아쉬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제자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쁘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베트남 교육부 차관과 하노이 국가대학 총장이 자리했다. 대화는 의례적인 인사에 그치지 않고, 베트남 교육정책의 변화, 한-베 학술 교류의 미래, 그리고 젊은 세대 간 심층적 소통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중간중간 유학 경험담과 문화 차이에 얽힌 유머가 오가며, 대화는 더욱 유쾌하고 깊어졌다.

만찬장을 나서며, 나는 1992년 수교 당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역과 소규모 인적 교류로 시작된 양국 관계는 이제 교육-경제-문화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양국은 서로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오래된 친구’가 되었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다리—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잇는 노력—가 놓여 있었다.

이번 또럼 서기장의 방한은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었다. 정권교체 이후 첫 국빈 방문이라는 정치-외교적 의미와 함께, 향후 30년을 향한 전략적 출발선이었다.

특히 ‘박항서’라는 이름이 상징하듯, 양국 관계는 단순한 국가 간 이해관계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고 존경을 쌓아올리는 ‘사람의 외교’로 발전해왔다. 축구장에서의 한 장면, 수업 시간의 열정, 기업 현장의 협업—이 모든 경험들이 오늘의 우정과 신뢰를 가능케 한 토대였다.

부산외대 교수로서, 그리고 ‘베트남 1호 유학생’이라는 특별한 기억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 자리를 더욱 각별하게 느꼈다. 젊은 날, 낯선 땅에서 배움과 꿈을 키웠던 나의 발걸음이, 오늘날 양국을 잇는 다리의 한 조각이 되었다는 사실이 벅차게 다가왔다.

앞으로도 학생들과 함께,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한-베 양국이 더욱 깊이 연결되는 길 위에서 그 다리를 놓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지난 30년이 그랬듯, 앞으로의 30년도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길 바란다.

배양수 전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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