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가 보여주지 않는 ‘K푸드’의 혼종성

2024-10-16

넷플릭스 <흑백요리사>가 많은 관심 속에 종료되었다.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교포이자 이주와 젠더를 연구하며 글로벌한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대해 고민하는 학자인 내게 이 프로그램은 ‘한국 요리사’와 ‘한식’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출연한 요리사 구성은 매우 다양했다. 한국 식재료를 사랑한다는 파브리나 조셉은 ‘외국인 요리사’라고 널리 알려진 스타셰프다. 하지만 글로벌 스타셰프 에드워드 리는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마음속은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어로 대답했다. 한국에서 출생했고 대만 국적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뒀다고 알려진 여경래는 대만 국적 소지자라도 외국인이라고만 말하기엔 미안하다. 아버지가 한국 국적자여만 한국 국적이 부여되는 부계혈통주의에 기반한 종전 국적법이 그가 출생한 지 수십 년 지난 1998년 양계혈통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경래처럼 19세기 말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의 자손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 화교는 해방 이후 수교국이었던 대만 국적을 획득했다. 중국 본토 출신 이주자의 자손이 대만 국적을 획득한 냉전시대 해프닝을 차치하고라도, 이들은 가부장제와 순혈주의에 기댄 국적법 때문에 한국 국적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머니가 한국인이더라도 2000년대 초까지는 1~3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단기 체류자격이 주어졌다. 게다가 1960~1970년대 화교의 경제활동을 제한한 차별적인 법 제도는 화교가 중국음식점으로 몰리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 중국요리가 전 국민적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러한 차별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문화에 자긍심을 갖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화교 커뮤니티의 집단적 기량일 것이다.

여경래와 그의 동료, 그 제자들이 만든 요리를 ‘한국요리 아닌 중국요리’라 쉽게 치부하는 것은 화교 사회의 역사·문화에 대한 부정과 비가시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철가방에 담긴 짜장면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상징적 의미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비빔 인간”이라고 표현한 에드워드 리가 자신의 인생을 담아 만든 비빔밥은 어떤가. 심사위원 안성재가 전통식 외형과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이 비빔밥이 아니라고 했을 때는 마치 그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의 하이브리드 정체성과 씨름했을 많은 디아스포라 구성원에게는 트라우마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칼로 썰어 먹는다고 그 음식이 비빔밥이 아닐 이유가 있는가?

또한 디아스포라의 삶이 담긴 요리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판단을 하면서,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는 이중 잣대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추장을 무스로 만들면 ‘글로벌’ 접근성이 좋아진다는 생각은 세계시장이 맵고, 발효하고, 삭힌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상상에 기댄 것이다. 그런 입맛을 가진 것은 “전 세계”가 아니라 서구 세계 일부일 뿐이다.

한국식 프라이드치킨, 라면, 김밥 등 전통을 벗어나 혼종적 요소가 강한 음식이 전 세계적 K푸드의 인기를 견인하는 상황에서, 과연 한식의 세계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계 셰프가 해외 요리쇼에서 활약하고, 한국인 요리사가 외국에서 요리를 배우며 일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이 시대에 ‘한국 요리사’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구태의연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한식과 그 긴 역사가 가진 혼종적 요소를 인정해야 한다. 빨간 김치가 대중화된 것은 겨우 18세기 무렵이며, 라틴아메리카에서 들여온 고추를 사용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식은 이미 세계 속에서 발전되어 왔다. 한식의 세계화란 특정 글로벌마켓에서 잘 팔리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포한 역사와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의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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