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 예우’ 로펌 고문 모시는 대기업

2025-03-22

※대한민국보다 대한민국 기업이 더 유명한 세상입니다. 어느새 수 십조원을 굴리고 수 만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밖에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상영의 ‘기업본색’은 기업의 딱딱한 보도자료 속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공시자료의 수많은 숫자 안에 가려진 진실을 추적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CJ대한통운은 이달 25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박선호 후보를 사외이사로 새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박 후보는 국토교통부 차관 출신으로 올해부터 법무법인 광장에서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광장은 CJ대한통운의 포스코 광양항 항만 운송 하역 입찰 담합 사건은 물론, CJ CGV의 1조원 규모 자본확충거래 자문 등을 맡고 있는 등 여러 차례 법률 자문을 해왔다.

카카오뱅크는 오는 26일 열리는 주총에서 엄상섭 후보를 신규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으로 분리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엄 후보는 2020년부터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지평은 최근 3년간 카카오뱅크에 법률 자문을 물론, 카카오와 SM엔터테인먼트 기업결합 자문도 맡았다.

의결권 자문사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일정 기간 내 회사 또는 계열사와 거래 관계가 있는 법률사무소의 구성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것은 독립성 훼손의 우려가 있다”며 이번 주총에서 주주들에게 이들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다.

최근 법률 대리나 자문 계약으로 이해 상충이 우려되는 대기업 사외이사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3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산총액이 전년도 명목 GDP의 0.5% 이상)과 공시대상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소속 상장회사의 사외이사와 감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법률대리 또는 자문 계약으로 이해관계나 이해충돌이 의심되는 사외이사 비중은 2008년 2.3%에서 2024년에 7.5%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해당 회사 또는 계열사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11.5%에서 3.0%로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총수 일가 등과 고교 동문이거나 대학과 전공이 같은 사외이사 비중도 14.7%에서 1.7%로 감소했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과 두산이 법률대리나 자문 계약을 맺은 법무법인, 회계법인 소속 사외이사를 주로 선임했다. 지난해 삼성 계열사 7곳에서 법률대리인이나 자문 계약 맺은 법인 소속의 사외이사는 9명이었다. 두산그룹 계열사 4곳의 경우 재직 중인 사외이사 5명이 법률대리인이나 자문 계약을 맺은 법인의 소속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김앤장은 삼성과 두산의 주요 계열사와 총수 일가 법률대리나 자문을 지속해서 맡아왔다.

대기업이 선임하는 로펌 소속 사외이사가 주로 경제·금융·조세 관료 출신(39명)인 점도 눈에 띈다. 규모 면에서는 판·검사 등 법조인 출신(34명)을 웃돌았다. 이들 관료는 퇴직 후 대기업집단 계열사와 거래가 자주 있을 수밖에 없는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재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대기업은 고위 관료 출신인 대형 로펌 고문을 영입을 통해 정부 부처와 원활한 소통을 기대할 것”이라며 “로펌 고문과 사외이사의 겸직은 결국 회사와 로펌 간 이해충돌 위험과 사외이사의 독립성 훼손이라는 위험이 있다”고 했다.

특히, 올해 자산 상위 대기업에서 로펌에서 일하는 고위관료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현상은 두드러졌다. 올해 주총에서 사외이사 3명을 선임한 신세계는 이중 두 명이 고위 관료 출신 대형 로펌 고문이었다. 효성도 올해 주총을 통해 두 명의 고위 관료 출신 대형 로펌 고문을 사외이사로 뽑았다.

사외이사들이 이미 기업과 연관되다 보니 경영권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3년 5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반대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전체 9102건 중 53건(0.58%)에 그쳤다. 미리 안건을 조율하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높은 찬성률을 보면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수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외이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외이사 선임 요건에 대한 추가적 강화가 필요하다”며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을 위해 주주와 시장이 판단할 수 있도록 등기임원 관련 정보 공시도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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