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닮았네" 드론 띄우자 놀라운 풍경…여수 숨겨진 보물섬

2025-08-05

진우석의 Wild Korea 〈27〉 여수 손죽도 트레킹

거친 해안 절벽 너머로 다소곳하게 안긴 마을 풍경을 보고 여행을 결심했다. 종종 여행은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다. 전남 여수 앞바다의 작은 섬 손죽도 여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손죽도는 아담하고 예쁜 섬이었다. 민박집에서 내놓은 백반과 막걸리마저 일품이었다.

하멜호가 가져온 변화

오후 1시 30분, 여수항을 박차고 떠난 하멜호는 고흥 나로도를 거쳐 1시간 20분 만에 손죽도에 닿았다. 지난해 7월 여수~나로도~손죽도~초도~거문도 노선에 하멜호가 취항했다. 1일 2회 운행하는데, 여수에서 불과 2시간 만에 거문도까지 주파한다. 덕분에 당일 섬 여행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당일 섬 여행은 권하지 않는다. 보물섬에 보물을 그냥 두고 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섬에서는 하룻밤 묵으며 여유롭게 정취를 즐기고 섬 특유의 맛깔난 백반을 맛봐야 한다.

손죽도에 내리자 앳된 얼굴의 장군 동상이 버티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총애한 손죽도 출신의 청년 장군 이대원(李大源)의 동상이다. 손죽도의 옛 이름은 손대도(損大島). 이대원이라는 큰 인물을 잃은 섬이라는 뜻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손죽도(巽竹島)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바뀐 이름인데, 대나무가 많은 섬이란 뜻이다.

항구에서 가까운 ‘부두민박’에 여장을 풀었다. 딱히 알아보지 않고 예약했는데, 나중에 보니 손죽도 여행에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이었다. 손죽도는 여의도 면적과 같은 2.92㎢이고, 해안선 길이는 11.6㎞인 아담한 섬이다. 설렁설렁 걸어서 둘러볼 수 있어 좋다. 마을 벽화에는 ‘가가호호 정원’이란 말이 적혀 있다. 집집이 소박한 정원을 꾸미는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여우 닮았네

손죽도 지도를 보면, 얼굴이 길쭉한 여우의 얼굴 같다. 왼쪽 귀에 삼각산(142m)이 있고, 오른쪽 귀에 마제봉(173m)이 자리한다. 두 산 사이에 천혜의 손죽도항이 있다.

항구 건너편에 두 개 바위가 우뚝 솟은 산이 보인다. 오늘 오를 삼각산이다. 마을 앞 손죽해수욕장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백사장을 지나, 컴컴한 대숲을 통과하자 불쑥 푸른 바다가 나타났다. 수려한 해변 풍경을 옆에 두고 나무 계단을 오르자 곧 삼각산 정상이 나왔다.

정상은 의외로 조망이 없다. 나무가 시야를 가린 까닭이다. 삼각산은 본래 3개의 암봉이었는데, 한 개가 떨어지면서 2개만 남았단다. 떨어진 돌이 삼각산 동쪽 아래 해변에 있다. 정상에서 내려와 호젓한 오솔길을 따르면, 여우 왼쪽 귀의 끝 지점에 이른다. 작은 섬인 무학도 뒤로 뉘엿뉘엿 해가 떨어진다. 노을 속에서 고기잡이 어선 한 척이 미끄러지듯 지나는 풍경이 평화롭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안주인 최혜경씨가 내온 저녁 밥상을 받고 깜짝 놀랐다. 정갈한 반찬들과 생선구이가 올라왔다. 귀하다는 거북손 무침이 맛깔스럽고, 함께 나온 막걸리도 맛이 좋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남편이 잡아 왔다면서 농어회를 내왔다. 자연에서 바로 온 맛을 이길 재간은 없다.

불룩한 배를 두들기며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이 정겹다. 돌담길은 이대원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로 이어진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사당에 드리운다. 장군 영정을 보고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이대원 장군의 얼굴이 마치 순정 만화 주인공 같았다.

절경 품은 봉화산 둘레길

산책하다 만난 한 주민이 집 구경을 시켜줬다. 제법 널찍한 마당에 흰 참깨꽃이 가득했다. 돌담 아래에 작은 꽃밭이 있었다. 봉화산 둘레길 입구인 지지미재 가는 길에도 주민 할머니를 만났다. 밭의 절반이 백일홍이었다. 지나는 사람이 꽃을 보며 좋아하는 걸 보면, 자신도 기쁘다고 활짝 웃으신다.

섬 최고봉인 깃대봉(237.4m)을 오를까 하다가 볼거리가 많은 봉화산 둘레길을 택했다. 길은 봉화산 아래 해안 쪽으로 이어진다. 해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섬 북쪽의 해안 절벽이 장관이다. 리아스식 해변처럼 울퉁불퉁한 절벽이 이어졌다. 건너편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섬은 소거문도다. 소거문도가 거문도가 아닌 손죽도 옆에 있는 게 특이하다.

드론을 올리니, 해벽 절벽 너머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친 해벽을 두르고 산비탈에 편안하게 안긴 모습, 그래! 바로 이 앵글이다. 따뜻하고도 경이로운 이 풍경을 섬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사람이 꽃이고, 섬에서는 마을이 꽃이다.

오른쪽 토끼 귀에 해당하는 마제봉을 거쳐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민박집에서 짐을 찾아 서둘러 하멜호에 올랐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눈을 감으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민박집에서 먹었던 백반과 막걸리가 눈에 삼삼하다.

여행정보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에서 손죽도행 하멜호가 1일 2회 다닌다. 편도 어른 3만3400원. 이틀이면 초도와 거문도까지 다 둘러볼 수 있다. 배 시간을 잘 맞추면 당일 2개 섬을 돌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손죽도 트레킹은 3시간은 잡아야 한다. 손죽도항~마제봉~봉화산 둘레길~깃대봉~삼각산~손죽도항 코스로 8㎞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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