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관매직은 내란에 이어 튀어나온 또 다른 과거의 망령이다. 조선 후기에 특히 성행했는데,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고 민중의 삶을 어렵게 한 폐단이라고 학창 시절 배웠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매관매직 논란이 가관이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이 윤석열 부인 김건희에게 장관급 위원장 자리를 얻기 위해 주었다는 금거북이 논란은 서희건설 회장 같은 사업가의 뇌물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배용은 ‘조선 후기’를 연구한 역사학자이자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교육행정가이다. 그는 교육자의 대표로 3년 임기의 초대 국가교육위원장이 됐다. 존경받는 삶까지는 아니어도 비교육적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뭔가 아주 옛날에 있었던 일이 지금도 일어나다니 신기하다”고 하는 초등학생 아이를 보며 부모로서 느끼는 참담함이 이 정도이니, 교육 현장에서 매사에 조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느꼈을 모멸감을 짐작할 수 있다.
후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낙점한 차정인 전 부산대 총장이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 법조인이나, 로스쿨 교수를 거쳐 대학 총장이 됐으니 그 역시 교육자라 할 수 있다. 유죄가 확정된 조국 전 장관 딸의 의대 입학을 취소한 데 대해 “총장이 학생을 지키지 못한 엄연한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표현해 논란이 됐다. ‘조국 사태’는 입시 공정성을 해친 중대한 법 위반이 법원에서 인정된 사건이다. 교육자의 사과는 입시비리로 제적된 사람이 아니라 그의 반칙으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 해야 하지 않을까.
옳고 그름에 관한 상식이 뿌리째 흔들리는 지금, 많은 이들이 있는 줄도 몰랐던 국가교육위원회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02년 대선 후보 이회창이 제안한 이래 오랫동안 논의됐고, 문재인 정부 때 입법을 거쳐 윤석열 정부에서 출범한 대통령 직속 기구이다. 말 그대로 교육의 백년대계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설치됐다. 교육부가 단기 정책에 치중하는 한계가 있어서 이 기구의 필요성에 많은 교육 관계자들이 수긍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국가교육위는 존재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위원장의 매관매직 논란 외에도 극우 성향 ‘리박스쿨’ 인사들을 기용해 교육을 이데올로기 전쟁의 도구로 삼으려 한 문제가 계속 불거졌다. 지난해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주요 방향이란 걸 내놨으나 좋은 말만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보고서가 됐다. 수능 서술형 도입, 내신 외부평가제 등 지엽적인 입시제도 개편을 설익게 논의한 사실을 흘려 혼란을 주기도 했다. 교육과 관련된 이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풀어가는 데 필요함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이 기구를 존치할 이유가 없다.
저마다 교육을 보는 관점이 다른 상황에서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할까. 교육을 이데올로기 전쟁의 수단으로 보는 파당적·퇴행적 관점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 강화의 도구로 접근하는 공리주의 관점도 넘어서야 한다. 세 아이의 양육자로서 나는 아이들을 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접한 가장 걱정스러운 뉴스는 지난 10년 사이 10대 자살률이 크게 늘었다는 질병관리청 통계이다. 전체 인구의 자해·자살 시도가 10년 전에 비해 3.6배 늘었는데, 그중 10~20대 비율이 40%에 달하고 특히 10대의 자해·자살 증가세가 가장 가파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안다. ‘교육=입시경쟁’ 등식이 공고해진 현실에서 아이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이 난센스다.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가치와 개성, 역량을 이끌어내는 교육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선 아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어야 하지 않는가. 청소년 자살은 교육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생 우울증 상담 확대, 자살 예방 캠페인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향으로 교육 환경을 만들고, 그것과 관련된 다른 사회 여건을 바꿔나가야 하는 일이다.
국가교육위 법에는 ‘사회적 합의’가 여러 번 나온다. “학생, 청년, 학부모, 지역 주민 등 교육발전과 관련해 해당 사회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위원에 포함하고 “사회 각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고 시민 참여와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그 소관 사무를 추진하기 위해” 국민참여위원회를 두게 돼 있다. 시민의회 같은 걸 둘 수 있는 것이다. 학교 밖 청소년을 포함해 많은 주체들이 참여해 어떻게 좋은 배움의 장을 만들지 숙의와 토론으로 찾아나가는 것을 지원하는 역할만 해도 이 기구는 존재 의미를 인정받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