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몸에 미생물 39조 개가 있다

2025-02-06

추운 겨울철, 독감과 다양한 호흡기 바이러스의 동시 유행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인데, 독감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부득이 장례를 지연하거나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치러야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독감은 1월 초 정점을 찍고 감소 추세지만, 재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사람메타뉴모바이러스,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유행하고 있어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동물 몸속 미생물 사람에게 치명

독감, 호흡기 바이러스 동시 유행

눈·코·입 만지기 전 꼭 손 씻어야

환자들의 증상은 심각하다. 통증과 발열·오한·기침으로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다. 전염력이 강해 가족 단위로 진료실을 찾는 사례도 빈번하다. 얼마 전 겨우 몸을 가누며 들어온 부부는 둘 다 독감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부인은 코로나19까지 동시 감염된 상태였다. 인후통과 심한 기침에 말 한마디조차 힘들어했다. 이처럼 증상이 심한 환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우리 몸은 37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39조 개의 미생물도 체내에 공존하고 있다. 설령 무인도에 홀로 있더라도 이미 수많은 미생물에 감염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미생물이 우리 몸에서 살아가려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들은 소화, 영양소 분해, 면역, 체중조절, 대사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암, 당뇨병, 심혈관질환뿐만 아니라, 우울·불안·치매 예방까지 많은 도움을 준다. 결국 우리는 미생물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들이 없다면 건강한 삶도 없다.

최근 이 아름다운 공존이 위협받고 있다. 다른 동물을 숙주로 생활하던 미생물들이 사람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서로 익숙지 않은 관계라 초기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처럼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린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예다.

이런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 인구 증가, 이동 수단의 발달, 동물 개체 수 감소 등이 지목된다. 문제는 이들이 가속화되고 있고, 불가역적이며, 세계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운송 수단의 발달로 이제 감염병은 불과 며칠 만에 세계 어디로든 확산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어떤 미생물이 언제 어디서 인류를 위협할지 예측하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미국의 세계보건기구 탈퇴 선언은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여러모로 감염병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다.

우리의 대응체계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독감 사망자 증가는 방역 시스템에 대한 강력한 경고 신호다. 정부는 mRNA 백신과 치료용 항체 개발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반갑긴 하지만 시간이 소요되므로 당장 유행할지 모르는 H5N1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감염병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의료 인력, 병상, 백신 확보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지만, 지금 현장에선 감염병 전문 의료 인력이 이탈하고, 고열 증상이 있더라도 응급실 진료가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리 정치·경제가 혼란한 시기라 하더라도 국민이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도록 감염병 대응 체계를 확실히 하고 예산을 선제적으로 투입해야 할 시점이다.

개인위생은 필수다. 손 씻기와 비말 감염 차단을 위한 마스크 착용이 핵심이다. 얼마 전 기차 안에서 “외출 후 손 씻기 생활화”라는 예방 메시지를 봤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마치 고기 없는 고깃국을 먹는 느낌이 들었다. 바이러스는 손에 묻어 있다가 눈·코·입을 만질 때 체내로 들어온다. 점막이 노출되어 있어 침투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출 후”가 아니라 “눈·코·입을 만지기 전” 손 씻기라고 해야 한다.

감기인지 독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감기약 복용 후 호전이 없다면 독감이나 다른 감염병을 의심해야 한다. 특히 당뇨병, 암, 심혈관질환 환자나 고령자는 주의가 더욱 필요하다. 예방 백신이 없던 코로나19 초기 때 이야기다. 한 달 전 전시회에서 만나 함께 사진까지 찍었던 지인이 연락 두절되었다. 알아보니 코로나19로 인한 중증 폐렴으로 사망했다. 당뇨병약을 복용했지만 건강했던 그였다. 마스크를 쓰고 손만 제대로 씻었다면 지금도 전시회에서 함께 웃으며 작품 감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덧없음이 느껴진다.

예측할 수 없는 감염병 시대, 대비가 필수다. 방역은 위기 때만 급히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감염병 대응 체계를 철저히 점검하고 보완해야 할 시기다. 신속한 대응과 철저한 준비 없이는 생명을 지킬 수 없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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