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주 일기] 견주사(史)

2025-01-23

전에 몇 번 털복이가 뒷다리를 쓰지 못하며 주저앉았던 이유는 살이 뒤룩뒤룩 쪄서 그랬던 거다. 한 자세로 오랫동안 자다가 다리가 저렸던 모양이다. 그리고 감기는 다행히 이틀 만에 잘 나았다. 눈썹이 눈을 찔러 조금만 깎아줘야지 했던 게, 은근히 재밌길래 온몸을 밀었던 데다 추운 날 반구대와 인근 마을을 마음껏 뛰어놀면서 그랬던 것 같다. 잘 먹이고 따뜻하게 해주느라 다음 달 카드값과 가스료에 두 눈이 질끈 감기지만 뭐, 됐다.

털복이는 몇 번 밀었는데 까망이는 한 번 밀었다가 두 번 다시 안 한다. 이놈은 털을 밀면 정말 볼품이 없다. 풍성한 꼬리털은 아까워서 건드릴 수 없었고, 재밌어서 마구 밀다 보니 풍성한 갈기가 다 사라져 버렸는데 내 눈과 정신건강을 위해 두 번 다시 할 일은 아니지 싶다. 어쩐지 그 뒤로 갈기 숱이 부쩍 줄어든 것 같다.

내 삶은 개와 함께 시작됐다. 부모님이 면목동에서 화장품 공장을 운영했는데, 부도 난 뒤 회사를 인수한 사람이 큰 회사로 키워냈다. 어쨌든 내 부모도 일 중독자라서 갓난아이를 개 두 마리와 집일 보는 사람에게 맡겨두고는 공장 일에 매달렸고, 진돗개 두 마리가 날 전담했다. 내가 엎어지면 ‘진숙이’가 날 붙잡았고 ‘진돌이’가 부모에게 뛰어갔다. 진돌이와 진숙이가 어렴풋하게만 기억에 있다.

부산으로 이사한 후 어머니는 유치원을 운영했다. 어느 날 한 학부모가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다줬다. 한 마리는 새카만 놈으로 ‘포미’라는 이름이 이미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황색으로 ‘루미’라고 불렸다. 한밤중에 몰래 마당으로 가서 포미를 데리고 왔다. 근데 이놈이 배를 까더니 눈을 희번덕거리는 거다. 귀여운 이미지가 망가지니 무서워서, 아니 혐오스러워서 얼른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놨다. 개를 키우면서 알게 됐지만, 제 딴엔 좋아 죽겠다는 표현이었는데 그땐 몰랐던 거지. 포미는 얼마 후 한 선생이 데리고 갔다.

루미는 1년쯤 집에서 키우다가 고기만 먹으려 해서 개장사하는 학부모 집으로 보냈다. 버스로 두세 정류장쯤 되는 거리였다. 근처에 개고기를 파는 재래시장이 있었는데 아마 그쪽에 고기를 대는 집이었던 것 같다. 거기 가서는 사료를 잘 먹는단다. 어느 날 루미가 마당으로 뛰어 들어와 꼬리를 붕붕붕붕 돌리며 어머니 주위를 빙빙빙빙 돌았다고 했다. 그 먼 거리를 찾아온 거다. 대체로 냉정한 어머니도 눈물이 났다 했다. 다시 키워 보려 했지만, 루미는 다시 고기만 먹으려 했고, 다시 그 개장수에게로 보내졌다. 이후 루미 소식은 모른다.

아버지가 당신 고향인 울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두왕동에 집을 짓고 진도까지 가서 진돗개 암수 한 쌍을 데려왔다. 이놈들 이름을 내 어릴 적의 두 마리처럼 진돌이, 진숙이로 지었다. 진돌이는 사자처럼 갈기가 멋졌고 발이 엄청나게 컸다. 진숙이는 여우처럼 날렵하게 생겼고 발이 아담했다. 어느 날 밤 두 마리가 동네가 떠나가라 짖었는데 부모님은 깊은 잠으로 그 소리를 못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개가 사라졌다. 복날 즈음한 때라고 했다.

그 무렵 양수리에서 똥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다. 복순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참 예뻤다. 명절 때 울산으로 내려오면서 데리고 왔다.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에게 말하니 풀어놓을 수 있게 해줬다. 진숙이 집에 복순이가 들어갔고, 부모님이 몇 년 동안 두왕동 집을 비우면서 복순이는 울산에서 내내 살아온 큰고모 집으로 갔다가 새끼를 낳은 뒤 죽었다. 한동안 그 고모를 저주했다. 막 새끼 낳고 피떡이 된 개를 그 추위에 내버려 둬서 비참하게 죽도록 했으니까. 지금까지도 분이 안 풀린다.

부모님이 다시 집으로 들어오면서 복순이가 낳은 새끼 중 한 마리를 데리고 왔고, 이름을 복돌이로 지었다. 울산 내려올 때마다 복돌이를 많이 예뻐해 줬다. 제 어미인 복순이보다 색은 연했지만 정말 많이 닮았었다. 울산에 제법 길게 머물던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복돌이가 들개무리에게 배를 물려 뱃가죽이 찢어지고 내장이 다 쏟아진 채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압박붕대로 응급처치를 해놨길래 병원에 데려가자면서 숨넘어갈 듯이 난리를 쳤다. ‘틀렸다, 널 기다린 것 같다’라고 말하며 돌아섰던 아버지 마음을 잘 안다. 복돌이는 내 얼굴을 보고 이내 죽었다. 많이 울었다. 한동안 동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나면 마음이 아픈 것보다 목이 더 따가워 멈추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때까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야, 이 개새끼들아!

부모님은 이후 절대로 작은 개를 키우지 않겠다며 백구 한 마리를 얻어왔고, ‘또 돌이’라는 뜻으로 ‘똘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이놈이 여덟 살쯤 됐을 때 두왕동 동네 어르신이 털복이와 짤복이를 데려다줬다. 털복이는 털이 많아 털복이, 짤복이는 털이 짧아 짤복이. 내가 지었다. 어머니는 연산이 잘못됐는지 털복이를 ‘길복이’로 부른다. 털이 길어 길복이. 탁음보단 쌍자음이 더 인상적이긴 하지.

두왕동이 개발되면서 똘이, 털복이, 짤복이가 아버지 작업장으로 갔다. 아버지는 이놈들 집을 정성스럽게 지었다. 2017년 여름에 열 살 된 똘이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다가 작업장에 온 아버지 얼굴을 보고 숨을 거뒀고, 털복이와 짤복이는 사나흘 동안 밥을 안 먹었다고 한다. 이듬해 초복 전날 짤복이가 사라졌다. 그리고 털복이는 혼자가 됐다. 털복이는 흰색 탑차만 보면 미친 듯이 짖었다. 그럴 때마다 짤복이를 훔쳐 간 개장수 차가 그런 모양이었나, 하고 꼭 안아주며 달래곤 했다.

내 어릴 적의 진돌이와 진숙이, 내 청소년기의 포미와 루미, 내 청년 시절의 진돌이와 진숙이, 그리고 복순이, 복돌이, 내 중년 시절의 똘이와 짤복이, 모두 다음 생에는 좋은 주인들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그리고 지금 내 옆의 털복이와 우리 까망이도 이번 세상에 건강하게 잘 살고 다음 세상엔 더 좋은 주인 만나 정말 행복한 견생을 살 수 있기를.

이민정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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