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사냥』으로 황순원문학상 신진상…‘배우 소설가’ 차인표
1997년 8월 4일, 일본군 위안부였던 훈(이남이) 할머니가 50여년 만에 캄보디아를 떠나 고국 땅을 밟는 모습이 방영됐다. 이 방송을 보면서 자괴감, 일본군에 대한 분노,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뒤엉켜있던 한 남자는 “복잡한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내 보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배우, 아니 작가 차인표씨의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2009년 첫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개정 전 『잘가요 언덕』)이다. 이때만 해도 성공한 연예인의 ‘일탈’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세 번째 소설 『인어사냥』으로 이달 초 황순원문학상 신진상을 수상하자 세간의 시선은 달라졌다. 성공한 배우인 그는 왜 소설을 쓸까.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21일 서울 청담동의 사무실에서 그에게 물었다.

원래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나.
“책을 읽는 건 좋아했지만, 책을 쓸 생각은 없었다. 훈 할머니의 방송을 보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는데, 이를 해소할 곳이 없더라. 그렇게 시작된 고민이 나를 작가로 이끈 셈이다.”
『언젠가…』의 내용은 첫 구상과는 다르다고 들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2007년 4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 갔는데, 할머니들이 한복을 입고 영정 사진 촬영을 하고 계시더라. 촬영 후, 내가 ‘날씨가 화창한데 같이 산책하시지 않으실래요’라고 여쭤봤는데, 모두 어두운 표정으로 거절하시더라. 문득 ‘할머니들은 이 땅에 돌아와서도 수십 년 동안 당시의 고통 속에 갇혀 살고 계시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동안 가해자에 대한 분노만 생각했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어떻게 바꿨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일단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같이 아파해 주고, 울어주는 거다. 그래서 원래 쓰려던 영웅담을 다 없애고, 할머니들이 진짜로 바라는 것을 써보기로 했다. 할머니들이 사과를 받고 싶으신 건, 한편으로는 용서하고 싶어서다. 『언젠가…』는 사랑과 용서, 화해를 담았다.”
이 문제는 결국 일본에서 찾아와 사과해야 풀릴 수 있을까.
“그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라고 본다.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누군가 잘못했다고 분노하기보다 양국의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면, 아픔이 재발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지 않을까. 그러면 억지 사과, 정치적 사과가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나온 뒤, 일본계 마이크 혼다 미국 하원의원이 연락이 와서 나눔의 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 배경을 떠나 인간 각자의 존엄성과 선한 마음이 모이면 거대한 변화를 만들고 역사도 바뀔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선한 마음들 모이면 역사 바뀐다 믿어

이번 수상작 『인어사냥』은 강원도 통천을 배경으로 영생을 위해 인어(人魚) 기름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탐욕을 다룬 판타지 소설이다. 신라와 구한말의 역사를 넘나든다. 심사위원단은 “유명세나 외적 조건보다 문학적 진정성과 완성도에 주목했다”고 평가했다.
인어라는 독특한 소재는 어떻게 떠올렸나.
“코로나19 시기에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중 마블코믹스 히어로들을 만든 스탠 리의 전기를 보면서 한국도 긴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사람들이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염원이 담긴 존재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인어, 용 등 다양한 전설과 신화 속 존재들을 찾게 됐다. 인어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서 발견한 소재다.”
구체적인 묘사와 빠른 전개가 인상적이라는 평이다.
“소설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지만 대본을 많이 읽었고, 그 대본이 영상화되는 현장에 계속 참여를 했지 않나. 그러다 보니 글로 쓰인 것이 영상 언어로 변하는 스토리텔링의 순서를 체득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소설을 쓰는 방법은 정반대다. 시각적으로 생각한 영상을 글로 바꾸는 작업이다. 내 소설을 보면서 ‘영화 같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인 것 같다.”
첫 번째 작품 『언젠가…』를 완성하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두 번째 소설 『오늘 예보』도 5년. 반면 『인어사냥』은 9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 작품에 대해 “용을 등장시킬 예정”이라고만 말했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도서관에서 다섯 시간씩 쓰는데, 내년 상반기에 나올 것 같다. 지금까지의 작품이 그랬듯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문학상을 받은 것은 어떤 의미인가.
“너무너무 감사하고, 나 같은 사람이 문학상을 받는 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다. 나보다 잘 쓰시는 수많은 분들한테 죄송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자유분방하게 이런저런 소재로 썼는데, 큰 상이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한다. 글을 쓰는 이유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서인데, 어떤 명예나 수준 등을 의식하면 글을 쓰는 기쁨이 사라지지 않겠나.”
연기와 글의 차이는 뭔가.
“연기는 창작자의 도구로써 활용이 된다. 물론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들은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나는 연기를 하는 내내 창작자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을 닮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결국 창조하는 기쁨, 그리고 그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유를 누리고 싶은 것이 글을 쓰는 이유의 원천이다.”
영화 흥행했어도 더 행복하진 않을 것
배우로서의 차인표도 ‘늦된 편’이었다. 1993년 MBC 공채 22기로 동기였던 심은하씨가 일찌감치 스타가 된 반면, 그에겐 한동안 단역조차 잘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4년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국민스타가 됐고, 작품에서 만난 신애라씨와 결혼했다. 그는 “당시 무명 배우가 주인공이라고 하니까, 여배우들이 다들 거절했었다. 그걸 알게 된 게 당시 PD가 나랑 밥을 먹으면서 캐스팅 전화를 돌렸다. 남자 주인공이 ‘차인표’라고 할 때마다 명단에 올라온 이름이 하나씩 지워지더라. 그때마다 나도 조마조마했다. 전부 거절하면 마지막엔 내 이름이 지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신애라·이승연씨가 응했다.
그는 한때 충무로에서 ‘불운’의 아이콘으로도 통했다. 그가 고사했던 ‘쉬리’ ‘반칙왕’ ‘친구’ 등은 대박이 났지만 대신 선택한 영화들은 흥행에서 쓴맛을 봐서다. 한편으론 ‘007 어나더데이’ 섭외는 남북 분단 문제를 왜곡한다며 거부했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작품을 고를 때 흥행 여부보다 철학이 중요한가.
“연기를 너무 사랑하니까, 자신의 삶이나 철학과 달라도 연기 자체에 매료될 수 있는 배우들도 있다. 나에겐 삶의 어떤 시점을 다 쏟을 만큼 중요한 영화인지, 중요한 프로젝트인지가 중요하다. 다만 그때그때 이것이 이치에 맞는 일인지, 상식적으로 괜찮은 일인지, 양심에 반하지 않는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정도일 뿐이다. 뭐,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같은 거창한 생각은 없다.”
거절한 작품이 대박 나면 속상하지 않나.
“당시에는 배가 아팠는데,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떠올리곤 한다. 만약에 내가 당시 흥행 잘 되는 영화들만 계속 선택해서 승승장구했다면, 지금 더 행복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든 흥행한 영화들은 나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배우들을 잘 찾아갔다고 본다.”
그렇게 흥행작을 외면하고 고른 작품 중 가장 애정을 갖는 영화는 무엇일까. 그는 주저 없이 ‘크로싱’을 꼽았다. 탈북자의 목숨 건 탈북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왜 선택했나.
“사실은 나한테만 온 게 아니라 유명 배우들한테 다 갔던 시나리오더라. 그런데, 보니까 흥행도 어렵고 촬영도 힘들 게 뻔했다. 다들 고사했고, 나도 처음엔 안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득 ‘탈북자들이 이런 대우를 받았겠구나.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존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가 거절당하며 돌고 돌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무도 안 받아주면 어디로 가겠나. 나라도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참여했다.”
역시 흥행은 안 됐다.
“완성도를 떠나서 일단은 배급할 때부터 어려웠다. 보니까 첫 주부터 오전 8시에 상영하는 식이었다. 그 시간에 누가 극장을 가겠나. 다만, 외국에선 교포들이 많이 보셨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출연한 영화 14편 중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세상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탈북자들의 사정에 대해서 6개월간 최선을 다했다. 지금까지도 배우로서 가장 보람 있는 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