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을 닮은 로봇, 즉 휴머노이드(Humanoid)란 단어에서 ‘-oid’는 닮은꼴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소행성(Asteroid)이 별(Aster)을 닮고, 오가노이드(Organoid)가 동물의 장기를 닮은 것처럼 인류는 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만들어 왔다. 이는 단순한 형상 모사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자연의 질서를 넘보려는 야심의 역사였다.
미·중 치열한 경쟁에 한국 도전장
자본·인력 밀려도 가치사슬 엮고
정부·연구소·기업 협력하면 승산

상상의 영역에서나 존재했던 휴머노이드가 이제 공장과 병원, 물류 창고와 일반 가정의 문턱을 넘어설 전망이다. 연일 쏟아지는 휴머노이드 기술의 진일보 소식은 ‘휴머노이드 전쟁’이라 부를 만하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하프 마라톤을 뛰고, 격투를 벌이는 복싱 로봇까지 개발됐다. 빅테크 기업의 자본과 인공지능(AI) 생태계를 등에 업은 미국에 맞서 핵심 부품부터 대량 생산까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한 중국의 패권 경쟁도 갈수록 치열하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피지컬 AI의 파도가 우리 삶에 더 큰 변혁을 가져올 전망이다. AI와 로봇의 융합으로 대표되는 피지컬 AI는 현실 세계의 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된 AI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AI’를 넘어 이제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이 물리 세계에서 인간과 협업하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AI 휴머노이드는 의료·제조·물류 등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서 작업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다. 미래 휴머노이드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로봇의 하드웨어 설계부터 구동을 위한 소프트웨어, AI, 클라우드, 사용자 인터페이스까지 한국만의 ‘휴머노이드 풀스택(Full-stack) 플랫폼’을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다행히 우리도 빈손으로 이 전쟁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필자가 몸담은 연구원은 20여 년 전 네트워크 휴머노이드 ‘마루’와 ‘아라’를 개발하며 역량을 다져왔고, 세계적 수준이라 자부하는 AI 휴머노이드 ‘KAPEX’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KAPEX는 당장 현장에서 쓸 수 있는 하드웨어 플랫폼을 갖췄다는 점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휴머노이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총합이다. 구동기·센서 등 핵심 부품의 기술 자립은 출발선일 뿐 사람처럼 행동하는 휴머노이드로 진화하려면 여기에 탑재될 피지컬 AI와 그 성능을 좌우하는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앞으로 경쟁력은 맥락과 패턴이 살아 있는 딥데이터를 어떻게 쌓아가느냐에 달렸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로봇은 더 똑똑해지고 움직임은 더 유연해진다. 더 많은 로봇이 현장에 투입돼 좋은 데이터를 만드는 선순환에 먼저 성공하는 나라가 기술 표준과 글로벌 시장을 차지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정부와 연구소는 독자적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플랫폼을 설계해 뼈대를 세워야 한다. 기업은 그 위에 제품·서비스·사업모델이라는 살과 피를 더한다. 공공 부문은 리스크가 큰 초기 구간을 책임지고, 산업계는 사용자와 시장을 통해 학습 속도를 높이는 민·관 협력의 역할 분담이 전략의 요체다. 불필요한 하드웨어 플랫폼 경쟁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공용 플랫폼을 함께 쓰며 데이터를 연합·공유한다면 제한된 자원으로도 성과의 시계를 크게 앞당길 수 있다.
한국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휴머노이드 연구에 뛰어들어 기술을 축적해 왔다. 지금 당장은 자본과 인력에서 열세이지만, 원천기술·플랫폼·데이터·AI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한 줄로 꿸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 한국형 AI 휴머노이드를 플랫폼 삼아 공공 테스트베드를 촘촘히 연결하고 이를 민간이 널리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면 휴머노이드 산업 생태계 구축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삼국지의 백미라는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은 바람의 방향을 읽어 빈 배에 조조 군이 화살을 쏘도록 유도했다. 숫자의 열세를 인정하되 주어진 조건을 지혜롭게 활용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휴머노이드 경쟁도 다르지 않다. 우리 고유 플랫폼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데이터를 AI로, AI를 서비스로 전환하는 체계를 하루속히 갖춘다면, 미·중 양강으로 굳어지는 휴머노이드 전쟁의 판세를 바꿀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한국형 휴머노이드 플랫폼으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길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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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록 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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