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고생한, 남 아닌 나를 위해 ‘셀프 선물’…연말 소비가 달라졌다

2025-12-27

연말이 다가오면 반복되던 풍경이 있다.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나 건네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는 시간이다. 얼굴을 스친 관계마다 작은 선물을 얹고, 의미보다 예의를 앞세우는 소비는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그러나 최근 연말 풍경은 이전과 다르다. 거창한 송년회와 형식적인 인사는 줄고, 소박한 모임과 선택적인 소비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송의찬씨(44)는 이번 연말이 유독 차분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매년 중고등학교 동창회, 대학 동기 송년회, 업계 지인들 모임까지 바쁜 연말을 보냈는데 올해는 송년회 일정이 딱 한 건만 잡혔다”면서 “올해는 선물조차 잘 돌리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 조사에서도 이런 변화는 수치로 확인된다. 롯데멤버스 리서치 플랫폼 ‘라임’이 실시한 연말 계획 설문에서 ‘집에서 휴식’이라고 답한 비율은 41.3%로, 전년 대비 12.6%포인트 상승해 가장 높았다. 신세계백화점이 진행한자체 조사에서도 연말 계획으로 ‘집에서 휴식이나 홈파티’를 선택한 응답이 54%로 1위를 차지했다.

차분해진 연말 분위기에는 팬데믹 이후 달라진 회식 문화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겹쳐 있다.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소비 위축에 대한 체감도 적지 않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6년 유통산업 전망조사’에 따르면, 내년 국내 소매유통시장 성장률은 0.6%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소비심리 위축(67.9%)과 고물가 부담(46.5%), 가계부채 부담(25.8%) 등이 성장 둔화의 주요 배경으로 꼽혔다.

다만 이를 두고 국내 소비자들이 지갑을 완전히 닫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고물가와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도 백화점 매출은 오히려 증가하며 다른 흐름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 롯데백화점은 이달 각각 올해 누적 매출 3조원을 넘기며 역대 기록을 새로 썼다. 연말 소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쓰는 방식과 쓰는 곳이 달라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유통업계는 이러한 변화를 ‘소비 선택의 재편’으로 설명한다. 과거에는 여러 사람에게 두루 선물하기 좋은 품목이 강세였다면, 최근에는 가족·연인·가까운 지인을 위한 의류·보석·뷰티 상품군의 매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중심으로 챙기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가격보다 의미와 만족도를 중시하는 소비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소비 기준이 ‘얼마나 많이 쓰느냐’에서 ‘무엇이 남느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회식이나 술자리처럼 즉각 소모되는 지출은 줄이고, 오래 사용하거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소비를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실용성과 정서적 만족을 동시에 충족하는 소비가 다시 주목받는 배경이다.

이런 움직임은 젊은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한 ‘셀프 선물’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불확실한 미래 환경과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자신을 위한 보상형 소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뚜렷하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는 ‘나에게 선물하기’ 탭을 강화하고 관련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소비 회복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불황 국면에서 나타나는 선별적 소비로 보고 있다. JP모건 웰스 매니지먼트는 보고서에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소비자들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대신, 개인적 만족과 정서적 보상이 분명한 영역에 한해 소비를 유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내 전문가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한다혜 박사는 “최근 연말 소비는 의례적 지출보다 선택적 보상 소비 성격이 강해졌다”며 “불확실성이 클수록 자신을 위한 작은 사치, 이른바 ‘트리트노믹스(treat-nomics)’가 강화된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관계가 가까운 사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소비 역시 ‘더 의미 있게’ 쓰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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