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비법] 증거 없는 주장은 존재하지 않은 일로 간주된다

2026-01-05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대체로 법적인 문제가 되고 안 되고는 법조문·판례 등의 법리로 설명할 수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있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 처음 구상한 논리나 법리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면 그와 비슷한 다른 논리로 설득하면 된다. 그러나 주장하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없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필자가 상담할 때 늘 받는 질문은 ‘이 사안으로 법적 조치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법적 다툼에서 일방 당사자를 대리하는 것이 직업이니 형식적으로는 대부분 가능하다고 답하지만, 실제로 되고 안 되고는 증거의 유무에 달려 있다. 나아가 그 문제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지느냐 역시 증거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가맹 거래, 대리점 거래, 대규모 유통업 거래, 하도급 거래 등 이른바 갑을 관계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갑의 임직원이 을에게 욕설했고, 그것을 녹음했다고 하자. 이 경우 실제 손해의 다과를 떠나, 녹음 파일 하나만으로도 갑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막대한 평판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고, 이에 대한 해명에도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더라도 보좌관이나 매니저 등 평소 접촉이 잦거나,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정보를 공유하던 주변 인물들의 제보로 인해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스마트폰의 성능은 2000년대 초반의 PC에 필적한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녹음기, 카메라, 메모장을 상시 휴대하고 다니는 셈이니 객관적 증거를 디지털 형태로 확보하는 것이 극히 쉬운 환경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것인지, 법정에서 변론하는 모습도 전과 같지 않다. 과거에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을 경우 목격자, 관계자의 증언으로 입증하곤 했다. 즉 문서 없이 증언으로 입증하는 것이 드물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 성실한 변론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예를 들어 타인에게 돈을 빌려줬으나 차용증을 작성하지 않았고, 이후 변제를 독촉하는 전화나 문자도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차용 사실을 들었거나 논의에 동석했다는 제삼자의 증언만으로 차용 사실을 입증하겠다며 증인을 신청할 경우, 법원이 이를 불허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필자가 실제로 접한 증인 신청 불허 사유는 다음과 같다.

“법원은 증인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채택하고, 채택하는 경우 결심에서 여러 증거를 조합해서 최종 판결에 증인신문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증인신문을 허락한다. 이는 증인신문 방법이 다른 증거방법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데 반해 증언의 객관성, 중립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증인신문 시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질문을 한다든지 감정적인 공방으로 인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증인 채택 여부나 증언 내용과 관련해 당사자 사이에 오해가 발생하고, 증인의 생업과 생활에도 지장을 초래하므로, 증인신문에 의존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에 근거한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증거 확보가 쉬워진 환경에서 증거 없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억울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앞선 사례에서 정말로 거액을 빌려주었다면, 차용증을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변제를 요구하는 문자나 메시지 한 통 정도는 남아 있지 않았을까. 그와 같은 흔적조차 없다면, 법원으로서는 차용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하도급 거래에서 원사업자가 추가 공사를 요구했고, 이 때문에 추가 공사 대금이 발생했으나 수급 사업자는 이를 받지 못한 채 하도급 거래를 종료했다. 이 경우 수급 사업자가 부당한 지시를 받아 추가 공사 대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면, 그 당부를 판단하기 위해 여러 사항을 검토한다.

우선 원사업자가 실제로 추가 작업을 지시했는지, 이를 입증할 증거가 있는지가 문제된다. 설령 명시적인 지시 증거가 없다면, 수급 사업자가 해당 작업이 최초 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별도의 작업임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논의를 시도했는지, 그리고 흔적이 남아 있는지가 중요하다. 계약 범위를 초과하는 작업을 요구 받았다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협의를 요청하는 것이 통상적인 거래 관행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추가 공사대금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지급 받지 못했다면, 원사업자에게 지급을 요구했는지,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작업 중단 또는 중단 예고를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증거로 남아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상식적으로 대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비용을 투입해 작업을 계속하는 경우는 드물고, 최소한 정산에 대한 약속이나 확인 없이는 작업을 중단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거래나 분쟁의 중요 국면마다 핵심적인 내용을 증거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문자·전화 등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최소한 내부적으로 논의한 내용을 공유하는 이메일이라도 기록해 둘 일이다. 과거에 비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간편해졌고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으므로, 증거가 없으면 사실 자체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불리한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법적 분쟁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이기기 어렵고 개인이 회사와 다투기도 어렵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분쟁 상황을 기록하고 증거만 따로 수집하는 별도의 조직, 즉 법무팀이 있다는 것이 큰 이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차후 분쟁에 대비해 꼼꼼히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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