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더 필요해"…구식 취급받던 전선의 전성시대, 무슨 일

2024-07-02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 관련 투자가 급증하면서 전력을 공급하는 송·배전망과 같은 전력 인프라 사업도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진입했다. 전선 등을 만드는 송·배전 사업은 한때 ‘구식 제조업’ 취급을 받으며 선진국 주요 기업들이 공장을 폐쇄하고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선(電線)의 전성시대가 부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선의 전성시대

실제 미국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구동을 위한 데이터센터 등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선 수요도 늘고 있다. LS전선은 2일 미국 송전망 운영사 LS파워그리드캘리포니아와 1000억원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LS파워그리드는 미국의 에너지인프라 기업으로 국내 LS그룹과는 무관하다.

캘리포니아 주는 2035년까지 약 61억 달러(약 8조4000억원)를 투자해 26개 신규 송전망과 85GW(기가와트) 이상의 재생에너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규모 전기 공급을 어렵게 하는 낡은 송배전망이 넷제로(탄소중립) 목표 달성의 걸림돌로 지적되면서 관련 투자가 이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나 원자력발전 등으로 전기를 생산한 후 도시로 보내는 데 필요한 고성능 해저케이블이 각광받고 있다. 해저케이블은 땅에 묻는 지중케이블에 비해 높은 안정성은 물론 소음과 전자파 문제 등 민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구글·아마존 등 빅테크들이 설립한 데이터센터의 소비 전력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기존의 전선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워졌다.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 수요는 오는 2026년까지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AI의 성장은 전력이 좌우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막대한 양의 전력을 적시에 공급해주는 고성능 전선이 중요해진 배경이다.

해저케이블 시장, 잡아라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한 시대에 발맞춰 전선도 다시 태어났다. 기존 노후 전선과 달리 대용량의 전류를 보낼 수 있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과 같은 고성능·고부가가치 전선 제품이 등장하면서 관련 기술 개발 경쟁도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국내 대표 전선회사로 꼽히는 LS전선과 대한전선은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의혹을 둘러싸고 지난달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대한전선은 최근 LS전선에 이어 해저케이블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초고압 해저케이블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LS전선 등 6개사에 불과하다. LS전선은 전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빅3’로 꼽히는 프리즈미안(이탈리아)·넥상스(프랑스), NKT(덴마크)에 이어 일본의 스미토모와 4위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다. 이들 5개 기업은 전체 시장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중케이블을 포함해도 초고압 전선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대한전선을 포함해 10여개사 남짓이다. 반면 관련 시장 규모는 오는 2033년까지 약 29조원으로, 지난해의 두 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재생에너지·AI·전기차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 확대와 노후 케이블 교체 수요가 겹쳐 전선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기 때문이다.

수요 > 공급, 한동안 이어질 듯

당분간 전선의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송전용 전선의 수명은 최대 50년에 달하지만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노후 전선 교체 수요가 늘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도 산업화 초기 매설했던 전선의 교체 연한이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 주요 전선 업체들이 갑작스러운 고성능 전선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한동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프리즈미안·넥상스 등 글로벌 해저케이블 기업들도 기존 전선 공장을 해저케이블 등 고부가가치 전선 공장으로 탈바꿈 중이다. LS전선 역시 이르면 연내 미국 내 해저케이블 공장 부지를 확정짓고 착공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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