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대형 인재(人災)가 집중된 시기를 꼽는다면 단연 1994~1995년이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이 사망했고 두 달 뒤인 12월 서울 아현동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해 불기둥이 50m 넘게 치솟았다. 그로부터 넉 달 뒤인 1995년 4월에는 대구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또다시 도시가스가 터졌다. 101명이 숨지고 202명이 다쳤다. 폭발 사고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6월에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불과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교량, 도시가스 시설, 지하철, 대형 건축물 등 다중이용시설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2025년 우리는 또다시 대형 연쇄 참사를 겪고 있다. 30년 전은 콘크리트, 현재는 데이터 관리 시스템의 연쇄 붕괴다. 30년 전과 사고의 형태는 다르지만 위험이 만들어지는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았다.
첫째,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통제의 속도다. 1990년대에는 급속한 도시화로 교량과 건축물, 인프라 이용량이 확대됐지만 정밀 진단과 구조 검증, 유지 관리 체계, 안전 의식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현재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다중 연결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보안 설계, 공급망 통제, 계정 관리, 데이터 거버넌스는 뒤처져 있다.
둘째, 사전 경고가 비용과 실적 논리에 묻힌다는 점이다. 성수대교 진동, 삼풍백화점 균열, 대구 상인동 가스 냄새는 모두 사전에 감지됐다. 그러나 교통 통제와 영업 중단, 공정 지연이 가져올 손실이 더 크게 계산됐다. 오늘날 사이버 보안도 구조가 같다. 취약점 리포트가 연일 올라오고 계정 관리와 외주 개발사 접근 권한의 위험성도 인지돼 있다. 그럼에도 투자 대비 수익이 없다는 이유로 보안 인력과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미뤄진다.
셋째, 어제의 정상 작동이 오늘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착각이다. 사고 직전까지 성수대교도 15년간 아무 문제 없이 사용됐고 삼풍백화점도 사고 전날까지 정상 영업을 했다. 오늘날 서버와 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콘크리트 내부의 균열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듯 해커는 이미 내부에 침투해 있을 수 있다.
넷째, 작은 결함 하나가 전체 시스템 붕괴로 증폭되는 구조도 동일하다. 1995년에는 고정 핀 하나, 기둥 하나, 가스관 한 지점의 파손이 전체 붕괴와 폭발로 이어졌다. 2025년에는 관리자 계정 하나, 외주 개발사의 접근 권한 하나가 전체 시스템 마비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안전관리가 여전히 ‘사후 대응형’이라는 점이다. 1995년 참사 이후에야 시설물 안전관리법이 정비됐고 건축·가스·교량 규제가 뒤늦게 강화됐다. 지금도 대형 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라 터진 후에야 과징금이 올라가고 인증 의무가 강화되고 있다.
30년 전 연쇄 참사가 남긴 교훈은 ‘안전 제일’과 같은 건설 현장 구호가 아니다. 인식과 관리의 속도가 기술과 사회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재난은 반드시 구조적으로 발생한다는 경고다. 여기에 더해 더 무서운 점은 과거 콘크리트 참사와 달리 현재의 데이터 참사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점이다. 30년 전 물리적 재난은 참혹했지만 구조와 재건이 끝나면 사건이 종결됐다. 그러나 2025년의 사이버 재난은 언제나 미결이다. 복제·유출된 데이터로 인한 피해는 시간차를 두고 반복적으로 터져 나온다. 또한 데이터 참사는 국지적이지 않다. 기업이나 지역 한 곳의 사고로 끝나지 않는다. 금융·교통·물류·보건·안보 등의 영역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국가와 사회 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데이터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물리적 사고에 대해서 보다 더 큰 경계감과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안전 체계를 사전 예방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순한 과징금 인상이나 인증 강화로는 부족하다. 책임감 있는 규제와 안전 투자 의무화가 필수다.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보안 표준 수립 및 준수, 보안 책임 명문화, 취약점 보고 시스템의 제도적 도입 등이 필요하다. 데이터 보안은 ‘비용’이 아닌 ‘필수 인프라 투자’라는 사회적 인식 제고와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갖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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