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대표 37% 환갑 훌쩍…M&A 모델로 기업승계 활로 열어

2025-06-17

의류 원단 제조 기업 A 사는 2021년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A 사는 결국 2023년 폐업했다. 30년도 더 된 원단 제조·수출 노하우는 그대로 사라졌다. A 사 대표였던 김 모 씨는 “선친에게 물려받은 회사라 폐업은 너무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매각도 고민했지만 주변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어 포기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B 사의 박 모 대표는 자녀들의 기업 승계 거부로 몇 년째 속앓이를 하고 있다. 요즘은 미국발 관세 쇼크까지 박 대표를 괴롭히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해 말 중국계 기업으로부터 매각 제안을 받았다”며 “힘들게 키운 회사다. 심경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국내 중소기업 오너들의 고령화 추세 속에 기업 인수합병(M&A)이 기업 존속 해법의 하나로 주목 받고 있다. 산업 지형 변화 속에 상속세 부담까지 작용하면서 기업 승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중소기업의 수십 년 된 기술과 영업 노하우가 그대로 사라지거나 헐값에 해외에 팔릴 경우 국가 차원에서도 막대한 손실이다. 각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들의 고용 지속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M&A 활성화에 더 힘을 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17일 중소벤처기업부의 2023년 중소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제조업 대표의 연령을 보면 은퇴 시점인 60~69세가 30.3%에 달했다. 50~59세는 36.8%로 가장 많았다. 평균 연령은 55.4세로 2022년 대비 0.1세 증가했다. 70대 이상 비율도 6.5%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기업인의 고령화 속에 회사 매각을 희망하는 기업인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매년 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후계자 부재다. 가구 제조 기업 C 사의 이 모 대표는 “성인 자녀 둘 다 회사 승계에 관심이 없다”며 “나 역시 자식들의 의사에 반해 회사 경영을 강권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상속세 역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들이 현금으로 상속세를 내기는 쉽지 않다. 결국 중소기업 대표의 은퇴 시기가 다가왔지만 적합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중소기업인들은 M&A 시장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민간 중소형 M&A 플랫폼 ‘리스팅’을 운영하고 있는 딥서치의 김재윤 대표는 “서비스 개시 초기인 1년 전과 비교해 매물이 10배 가까이 늘었다”면서 “업계에서는 약 20만 중소기업이 매각 니즈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손수 일군 기업을 매각하려는 고령의 창업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이어 “지방의 중소 제조업을 운영하는 창업자의 경우 경영상 어려움보다는 후계자를 확보하지 못해 매각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M&A 수요에 비해 양질의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영세한 기업일수록 M&A 전문 인력 부족과 관련 정보를 구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IBK경제연구소가 지난해 7월 업력 10년 이상 중소기업 597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개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응답은 41.1%였다. 반면 중개업체를 신뢰한다고 답변한 곳은 8.8%에 불과해 정보비대칭성이 중소기업 M&A에 장벽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기업들이 진행하는 초대형 M&A와 달리 초기 정보 부족으로 제때 M&A가 성사 되지 못해 폐업하거나 중국 자본 등에 기업이 넘어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M&A를 담당하는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중국 측에는 아직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브랜드 가치가 여전히 존재해 경영난이 심화하는 한국 기업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있다”며 “최근에는 중동 쪽에서도 한국 기업 M&A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알짜 기술 기업이 헐값에 해외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요 발굴부터 자문, 중개, 금융까지 원스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부는 이달 말까지 정보 비대칭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10년부터 운영해 온 ‘M&A 거래정보망’에서 거래 중개 기능을 빼고 정보제공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중소기업 기업 승계 특별법과 같은 전향적인 제도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영권 이전을 가족 구성원(가업)뿐만 아니라 전문 경영인이나 인수합병(M&A)까지 확대해 정책 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60대 이상 중소기업 대표 중 32%는 임직원 또는 M&A를 통한 제3자 기업승계를 이미 선호하고 있다”며 “제3자 승계시 세금 완화를 비롯해 승계절차 간소화, 승계 자금지원 등 종합적인 지원책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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