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현지시간) 칠레 대통령선거에서 강경 우파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공화당 후보(59)가 당선되면서 칠레가 ‘블루 타이드’(중남미에서 우파가 집권하는 현상)에 합류했다. 강력범죄의 공포에 시달려온 칠레 유권자들은 좌파 정권을 4년 만에 끌어내리고 ‘칠레의 트럼프’로 불리는 카스트 후보를 선택했다.
칠레 선거관리위원회는 결선 투표일인 이날 개표 99.97% 기준 58.2%를 득표한 카스트 후보의 당선을 확정했다. 카스트 당선인은 중도·좌파 연합의 히아네트 하라 공산당 후보(41.8%)를 16.4%포인트 차이로 제쳤다.
지난달 1차 투표에서 하라 후보는 26% 지지를 얻으며 카스트 후보(21%)를 앞섰다. 하지만 결선에서 보수 유권자의 표가 결집하면서 카스트 후보가 최종 승리했다. 이로써 좌파 가브리엘 보리치 현 대통령은 정권을 우파에게 넘겨주게 됐다. 카스트 당선인은 내년 3월11일 취임해 4년 임기를 지낸다.
카스트 당선인은 승리 연설에서 “칠레는 범죄와 고통, 공포에서 다시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우리는 국경을 되찾을 것이다. 누구든 칠레에 들어오려면 문을 두드리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 결과는 강력한 정부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칠레는 최근 5년 사이 수도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강력범죄가 급증하면서 치안이 나빠졌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경제난의 늪에 빠진 이웃 국가 난민들이 ‘부국’ 칠레로 대거 입국했고, 베네수엘라 출신 갱단이 밀입국 사업을 키우면서 칠레에 뿌리를 내렸다. 강도, 소매치기 등 범죄자 다수가 이민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칠레에서는 반이민 정서가 퍼지고 보리치 정권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가 커졌다.
카스트 당선인은 불법 이민자를 즉시 추방하고 국경에 장벽과 도랑을 만들겠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사한 공약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이민단속국 창설, 불법 이민자 고용 업주 강력 처벌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군을 배치하고 조직 범죄자를 가두는 엘살바도르식 대형 교도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카스트 당선인은 또 급격한 물가 상승을 겪은 칠레에 자유시장 경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법인세 27%에서 23%로 인하, 사업 규제 완화, 노동법 유연화, 국영기업 민영화 추진 등이 그의 공약이다. 사회복지를 비롯한 공공 지출도 9조5000억~11조5000억페소(약 15조~19조원) 줄일 방침이다.
고향 산티아고 지역구에서 하원 4선을 지낸 변호사 출신 카스트 당선인은 독재 정권을 옹호해 비판받았다. 카스트 당선인의 형은 군부 독재자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독일인인 그의 부친은 나치당원이자 육군 예비역 장교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 칠레로 이주했는데, 카스트 당선인은 부친이 “나치의 강제 징집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2017, 2021년 대선에 나왔다가 낙마한 그는 임신 중단, 동성혼에 반대해왔으며 기후변화 현상을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올해 대선 운동 과정에서는 이러한 의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범죄와 이민 키워드 위주로 연설하며 지지층을 넓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남미 국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겠다며 노골적으로 우파 정치인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카스트 후보의 당선은 ‘핑크 타이드’(온건 좌파 집권 현상)의 종언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2024년 2월 당선),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2023년 11월 당선) 등 최근 중남미에선 우익 정치인들이 잇따라 집권해 친트럼프 노선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