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지켜온 쌀·쇠고기 등 농산물 추가 개방은 한·미 관세 협상 합의에서 제외됐다. 반면 미국이 요구해온 자동차 배기가스, 농식품 검역, 디지털 분야 등 비관세 규제 완화는 상당 부분 반영됐다. 특히 디지털 분야 개방은 온라인플랫폼 규제와 망 사용료 부과 논란, 고정밀 지도 반출 여부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백악관이 14일 발표한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르면, 쌀·소고기·대두 등 주요 농산물에 대한 추가 개방 요구는 이번 협상에서 제외됐다. 이들 민감 품목에 대해 관세 인하나 물량 확대 같은 시장 개방 조치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른바 ‘저율관세할당(TRQ)’ 확대도 포함되지 않으면서, 우려됐던 농산물 시장 충격은 일단 피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농업 분야의 민감성을 감안해 농업 시장의 추가 개방이 없도록 철저히 방어하고, 투명성 제고 및 협력 강화에 주안점을 뒀다”고 밝혔다.
대신 자동차와 디지털, 농업, 지식재산권, 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제도 정비와 절차 간소화 조치가 포함되면서 비관세 장벽이 상당 부분 완화됐다.
자동차 분야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미국산 차량의 수입 상한을 철폐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미국 연방 자동차 안전기준(FMVSS)을 충족한 차량에 한해 연간 5만 대까지 추가 개조 없이 수입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 그 상한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2023년 기준 미국산 차량 수입 규모가 약 4만7000대라는 점을 들며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농업 분야에서는 유전자변형생물(GMO)과 원예작물 관련 수입 절차가 정비되면서 관련 심사와 도입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 본부장은 “위해성 심사 기준과 자료제출 범위 등을 명확히 하는 위해성 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며, 미국이 신청해 심사가 진행 중인 품목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련 절차에 따라 심사를 완료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미국산 과일·채소 등 원예작물 검역과 관련해서는 미국 전담 창구(U.S. Desk)가 설치된다. 다만, 산업부는 미국 전담 창구가 신설되더라도 기존의 8단계 검역협상 절차가 단축되거나 생략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절차가 충실히 이행돼야 원예작물 수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 측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되면서 향후 업계에 큰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는 “망 사용료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히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자전송(온라인) 관세 영구 유예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이번 합의로 구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콘텐트 사용 사업자(CP)에게 망 사용료를 요구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간 미국의 대표적 빅테크 기업 구글이 요구해 온 1대 5000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역시 허가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이 일본과 비교해 여러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트럼프 임기인 2029년 1월까지 ‘투자(investment)’를 완료한다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한국은 이를 ‘투자 약정(investment commitment)’으로 명시했다. 김 장관은 “한국은 일본과 달리 그 시점까지 실제 자금을 투입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업 대상을 선정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일본 팩트시트에는 없는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문구가 한국 측 문서에는 포함된 점도 큰 차이로 꼽았다.
정부는 산업통상부 장관이 투자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위원회 구성원에도 한국인이 참여하도록 한 점을 주요 성과로 제시했다. 팩트시트에는 ‘대통령에게 투자를 추천하기 전에 한국과 직접 협의하거나, 산업통상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양국이 지명한 인사들로 구성된 협의위원회를 통해 한국과 협의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투자 결정 과정에서 한국 측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크다는 의미다. 김 장관은 “프로젝트 매니저가 한국인 또는 한국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역시 일본에는 없는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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