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니켈 채굴이 급증한 필리핀에서 산림 황폐화 등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3일(현지시간) 필리핀 남부 지역 주민들이 이로 인해 홍수·흉작 등 직접적 피해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환경과학 전문 매체 몽가베이에 따르면 최근 필리핀 남부 전역에서 니켈 채굴이 빠르게 늘고 있다. 민다나오섬 카라가 지역에서 운영 중인 26개 광산 가운데 23개 광산이 니켈 광산이며, 1939년부터 광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다나가트 제도에도 10개의 니켈 광산이 운영 중이다.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 등에 필요한 핵심 광물로, 필리핀은 세계 2위 니켈 생산국이다. 지난해 수출액은 약 10억4000만달러(약 1조5300억원)에 달했다. 미국 기후단체 국제기후권리(CRI)에 따르면 최근 약 5년간 카라가 지역에서 채굴된 니켈의 92%가 중국으로, 5.5%가 인도네시아로 수출됐다.
문제는 채굴 과정이 지역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채굴 시 광범위한 산림 벌채가 불가피해 홍수가 잦아졌다.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해안은 탁한 갈색이 됐다. 토양이 척박해지며 농작물 수확도 크게 줄었다. 카라가 지역 농부들은 최근 세 차례 연속 파종에 실패했는데, 주민 세실리아 투말리스는 이를 두고 “니켈 채굴 이전엔 이런 문제가 없었다”고 SCMP에 말했다. 건기에는 다량의 먼지가 발생해 주민들이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피해도 호소하고 있다고 몽가베이는 밝혔다.

피해가 확산하자 주민들은 채굴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필리핀 광업 2025 콘퍼런스·전시회’에서 “무책임한 채굴은 용납될 수 없다”면서도 광산업을 지역 경제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SCMP에 따르면 남부 지역 주민들은 과거에도 채굴 허가 재검토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지만 정부는 대응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친환경 산업을 위한 니켈 채굴이 새로운 환경 오염을 낳는 역설적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지 환경단체 ‘알리안사 티길 미나’의 제이비 가르가네라 코디네이터는 성명에서 “이른바 ‘녹색 전환’을 명분으로 니켈·구리·코발트 등 광물을 더 많이 캐내겠다는 생각은 생태 파괴와 사회적 불평등을 낳은 기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뿐”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