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사태 관전평

2024-09-26

영국의 사회학자 엘리스 캐시모어는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삶이 너무 빤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예의 바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 안전하거나.

계산 가능성만을 앞세우는 관료제의 뻔한 규제에 가로막혀 숨이 막히거나, 음주·흡연 등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생활양식 위험(lifestyle risks)’과는 또다른 불확실성이나 본능 혹은 정열에 기반한 삶을 꿈꿀 때 사람들이 스포츠를 찾는다는 것이다. 캐시모어는 월드컵을 두고 이런 말도 했다.

대표팀 감독 선임 공정성 논란

정치권의 도 넘은 개입도 문제

축구 발전 장기플랜 머리 맞대야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받는 11명이 빵빵하게 바람을 넣은 가죽공을 7.2m 선(골문 양쪽 포스트 사이의 거리) 너머로 옮기려 하는 경기. 그런 팀들이 5주간 벌이는 64경기를 37억 명이 시청하는 대회.” (한울아카데미,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

이런 축구가 최근 국민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현안 질의가 정점이었던 듯하다. 관중과 TV 중계는 변함없되 공수 인물 면면이 새로웠다. 공격은 문광위 소속 국회의원, 수비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등 집행부와 급작스럽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는 바람에 미운털이 박힌 듯한 홍명보 등 축구인들이었다.

고성과 날 선 추궁이 이어지고, 누군가는 울먹거렸다. 편법 대출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야당 의원까지 뛰어들어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은 볼썽사나웠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 손흥민·이강인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성에 안 차는 성적표를 가져왔던 축구 대표팀 감독에 홍명보 당시 프로축구 울산 HD감독을 앉힌 것이 과연 공정했느냐. 그런 인사 배후의 정몽규 회장은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한 축구협회 관계자 말마따나 어떤 프레임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사태의 진상이 제각각인 듯하다. 문제 식별 단계부터 생각이 다르다면, 해법 역시 차이 날 수밖에 없다.

①비판자의 프레임=불량한 성적 말고도 ‘유체이탈’ 화법으로 공분을 샀던 전임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은 축구협회 정 회장과의 친분에 따른 ‘정실인사’의 결과로 보인다. 2021년 3선에 성공한 정 회장은 종전까지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회에서 뽑던 대표팀 감독을 이사회에서 선임하도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이사회는 정 회장이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다. 바뀐 규정에 따라 이사회가 지난해 2월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고, 그의 후임으로 지난 7월 홍명보 감독을 뽑았다. 특히 축구협회는, 지난 6월 감독 후보군을 압축해 이사회에 추천하는 전력강화위원회(강화위) 정해성 위원장이 돌연 사표를 제출하자, 강화위 업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에게 마무리 선임 작업을 맡겼다. 홍 감독 선임에 학맥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돈다. 정 회장뿐 아니라 홍 감독, 이 위원장이 모두 고대 출신이다.

②한 축구협회 관계자의 프레임=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은 비밀에 부치는 게 국제관례다. 그런데 강화위 회의만 하면 내용이 줄줄 샜다. 위원들이 굉장히 잘못한 거다. 이임생 위원장은 강화위의 감독 추천 과정에 개입한 게 아니다. 강화위의 역할은 10차 회의(6월 21일)에서 감독 후보군을 3명으로 압축해 이사회에 추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이 위원장이 홍명보 울산 HD감독을 설득해 대표팀 감독을 맡도록 한 것은 강화위의 일이 아닌 협회의 일을 한 것이다. 축구협회가 감독 선임권을 이사회로 가져온 것도 강화위 등 분과위원회들은 자문 역할만 하도록 하는 통상적인 조직 변경에 불과했다.

③외부의 시선=재일교포 3세인 신무광 재일 축구칼럼니스트는 국제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선을 넘었다고 본다. 정치가 스포츠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같아 보기 좋지 않았다. 짧은 시간 수집해 검증되지도 않은 듯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회의원들이 축구인들에게 무차별적인 질문을 던지는 장면은 마치 왕따(따돌림) 행위 같았다.”

신씨에 따르면 일본 대표팀 감독은 기술위원회에서 뽑는다. 신씨는 감독 선임 과정 역시 비밀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캐시모어는 엄청난 즐거움을 주는 제도로만 치부하기에는 스포츠의 정치·경제적 중요성이 너무 커졌다고 했다. 그렇다고 온 국민의 투명한 감시하에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부터 훈련 내용과 방향까지 승인을 받아야 할까.

정부 감사가 진행 중이니 정 회장이 책임질 일 있으면 지면 된다. 집행부 교체에 상관없이 축구 발전 장기 계획을 흔들림 없이 실천해 나갈 시스템 마련에 축구인들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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