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개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향년 7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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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전 장관은 육군사관학교 29기로 ▶6포병 여단장 ▶23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육군 제1야전군사령관 등을 거쳐 합참의장을 지냈다.
이후 김 전 장관은 2009년 9월 제42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합참의장 재직 시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국방개혁, 군 전력 구조개편 등 주요 군사현안에 이해도가 깊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정부 내에선 군 정책의 연속성과 조직 안정화를 이끌 적임자라는 얘기가 나왔다.
야전 지휘관뿐 아니라 육군사관학교 교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근무 경력도 갖춰 ‘문무 겸비형 장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통역 없이도 숱한 국제회의에 참여할 정도로 탁월한 영어실력을 지녔고, 퇴근 후에도 공부하는 대표적인 장군으로 꼽혔다.
김 전 장관은 취임 후 '일류 국방경영', '강한 군대', '국민의 국방'을 내세워 국방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전면전 대비와 함께 국지도발, 테러 같은 다양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군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안보 위기 국면을 맞았다. 북한의 국지도발에 군사대비태세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비판 여론이 거셌다. 김 전 장관은 사의를 표했지만 청와대의 선택은 유임이었다. 흔들리는 군심을 결집하고 국방개혁의 남은 과제를 완수하는 데 그의 역할이 남아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23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국면에선 결국 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사의 수용이라는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경질이었다. 그는 이렇게 군의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여론을 뒤로 하고 1년 2개월 만에 국방부 장관에서 물러났다. 김 전 장관과 함께 근무한 군 당국자는 “합리적 의사결정, 온화한 성품으로 부하들에게 신망이 두터웠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국방부 장관 퇴임 이후에는 군인 자녀를 위한 기숙형 사립고등학교인 한민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해 2011∼2016년 학교법인 한민학원(한민고) 이사장을 맡았다. 이밖에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 ▶육군포병전우회 회장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 공동대표 등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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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이며, 합참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발인은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