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영국을 국빈 방문했다. 1기 때인 2019년 6월 이후 두번째 국빈방문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영국을 국빈으로 두차례 방문한 건 트럼프가 처음이다.

영국은 트럼프에 전례가 없는 초특급 의전을 준비했다. 이날 미국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가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 도착하자 어기(御旗·왕의 깃발)를 지키는 영국 공군 ‘어기 비행대(King‘s Colour Squadron)’가 도열했다. 찰스3세 국왕이 원저성에서 주최하는 환영 행사와 만찬에선 “사상 최대 규모의 의장대를 배치할 것”이라고 영국 국방부가 밝혔다.
트럼프와 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오는 17일 오전 찰스 3세, 커밀라 왕비, 윌리엄 왕세자, 캐서린 왕세자빈과 함께 왕실 마차를 타고 기병대원과 군악대 호위를 받으며 윈저성에 도착하게 된다. 트럼프와 찰스 3세 국왕이 악수할 때 윈저성과 런던탑에선 동시에 예포가 발사된다. 윈저성 환영 의식에는 말 120마리와 영국 해병대·해군·육군·공군 장병 1300명이 동원된다.
영국 국방부는 “사상 최초로 국빈 방문 행사에서 영국군-미국군 합동 공중분열이 열린다”며 “양국이 공동으로 설계한 F-35 전투기가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런던 곳곳에선 대규모 반(反)트럼프 시위가 이어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16일 밤 윈저성 외벽에 몇분간 트럼프를 조롱하는 사진과 영상이 재생됐다. 영상에는 트럼프가 2023년 기소됐을 당시 찍은 머그샷(수용자 기록부용 사진), 2019년 수감 중 사망한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과 찍은 사진 등이 포함됐다. 윈저성 앞에선 수십명의 시민들이 ‘악랄한 파시스트’, ‘거짓말쟁이’, ‘차 마시러 온 독재자’ 등의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트럼프의 국빈 방문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신부터 겨냥할 것”…언론 직접 위협
한편 트럼프는 출국 전 미국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진영을 직접 겨냥한 강경한 조치가 다층적으로 취했다. 트럼프는 이날 영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호주 언론으로부터 재임 뒤 재산 증가 등 이해충돌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신은 호주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며 “곧 호주 총리가 방문하는데 당신에 대해 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하라”며 기자의 ‘입’을 일방적으로 막아버린 뒤, 다른 기자들을 향해 “더 좋은 분위기로 만들어보라”고 했다.

미 ABC방송 기자에겐 극우 활동가 찰리 커크 피살 관련 증오 발언을 단속하겠다는 팸 본디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당신은 나를 불공정하게 대하고 있고 마음에는 증오가 많이 담겼다”며 “우리는 당신(질문을 한 기자)같은 사람부터 겨냥할 것이고, 아마 ABC도 겨냥하게 될지 모른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이어 “급진 좌파가 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며 자신의 이러한 행동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전날엔 뉴욕타임스(NYT)를 “급진 좌파 민주당의 대변인”이라고 비판하며 NYT와 소속 기자 4명 등을 상대로 21조원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의회 권한’ 포기하고…‘노예 역사’는 지우고
이날 여당인 공화당이 주도한 하원 의회에선 위헌논란에 휩싸인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대한 의회의 견제 권한을 사실상 스스로 포기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다.

트럼프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현재 무역 적자 구조를 국가의 비상상황으로 규정하고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법원 1·2심 재판부는 IEEPA를 근거로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이르면 11월에 이뤄질 거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날 하원에선 내년 3월까지 상호관세 부과의 근거가 된 비상사태 규정과 관련한 의회의 관련 판단 권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양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213대 211로 통과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고, 공화당에서도 3명의 반대표가 나왔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미국의 국립공원관리청(NPS)의 관할 부처인 내무부가 국립공원에서 흑인 노예제와 관련한 각종 자료와 전시물 철거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서명한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따른 조치다.

당시 트럼프는 “미국의 역사적 인물을 비하하는 이념을 담은 각종 전시물을 국립공원에서 제거하라”고 지시했지만, 철거 대상이 된 전시물은 주로 노예제의 비참한 현실과 인종차별의 악습을 고발하는 각종 사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부는 국경 차단…유엔총회 참석도 불허?
국무부는 국경을 보다 강하게 차단했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마가(MAGA) 세력이 추모하는 찰리 커크의 죽음에 기뻐하는 외국인들을 추방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그는 “찰리 커크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암살을 축하한다고 주장하는 외국인에게 우리가 왜 비자를 발급해야 하느냐”며 “우리는 이미 (관련자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일부 (발급됐던) 비자도 이미 취소했다”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어 “살인을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바보들이 미국 시민권자 중에도 있다”며 “그들은 비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비자를 취소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루비오 장관은 오는 23일 뉴욕 유엔총회에 참석하려는 일부 국가의 외교관에 대해서도 비자 발급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미 팔레스타인에 대한 (발급 거부) 조치가 확정됐다”며 “미국에 해를 끼치려는 사람들에 대한 심사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관계자 80명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하거나 취소했고, AP통신은 국무부 내부 문건을 입수해 “브라질, 이란, 수단, 짐바브웨 등의 외교관에 대한 비자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브라질통신(AB)은 이날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브라질 대표단에 대한 비자 발급이 이례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라질 일각에선 유엔총회 연설이 예정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대통령 외에 일부 참모들의 입국이 거부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룰라 행정부가 자신과 가까운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쿠데타 모의 등 혐의로 기소한 것을 비난하며 브라질에 50%에 달하는 초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