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협력 관계가 갈등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에 10억달러(약 1조3800억원)를 투자한 후 6년 간 이어져 온 돈독한 협력 관계의 끝은 어디일까?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벗어나고픈 오픈AI
최근 오픈AI는 구글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컴퓨팅 자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오픈AI는 투자 계약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 애저에서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모든 클라우드 인프라를 공급받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자사 AI 모델 독점 사업권을 제공해왔다.
지난 1월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수십억달러 규모 투자 계약 조건을 재조정하는 논의를 진행하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보유 오픈AI의 지분 구조와 향후 투자 방식, 인프라 공급 조건 등을 재협의했고 이 과정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지난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오픈AI 경영진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반경쟁적 행위로 고발할지 논의하고 있다. 양 측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계약 조건에 따라 오픈AI의 모든 지적재산권에 접근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저 오픈AI 서비스’란 PaaS 제품을 통해 오픈AI의 모든 AI 모델을 클라우드 플랫폼에서 제공한다. 오픈AI가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AI 모델 API 서비스 외에 GPT 모델군과 챗GPT 등을 클라우드 플랫폼에서 이용할 방법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델의 상용화와 도구화에 집중하고, 오픈AI는 모델 개발 자체에 더 집중하는 파트너 관계였다.
둘 사이의 호혜적 관계는 점차 경쟁 구도로 변해갔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 깃허브의 AI 코딩 도구 ‘깃허브 코파일럿’은 오픈AI의 GPT-4와 코덱스 모델을 사용해 2022년 출시돼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오픈AI가 AI코딩 스타트업 윈드서프(Windsurf)를 30억달러(약 4조1400억원) 규모에 인수하려 나서면서 양 측이 같은 시장에서 정면 충돌하게 됐다. 오픈AI는 윈드서프의 경쟁 제품을 갖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자사의 지적재산권에 접근하는 걸 달가워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의 영리 법인 전환에서도 양 측은 갈등을 보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의 영리 법인 전환 시 의결권을 갖고 있고, 오픈AI 영리 법인의 지분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얼마나 가져갈 지 대립하고 있다.
오픈AI는 지난 3월 소프트뱅크를 비롯한 투자자들에 민간 기술 기업 중 사상 최대 규모인 400억달러(약 55조3000억원)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연말까지 영리법인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투자금이 200억달러(약 27조6500억원)로 줄어든다. 오픈AI가 영리법인으로 전환하려면 반드시 최대 주주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승인이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의 제안보다 높은 지분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잘 나가는 오픈AI, 자체 인프라 확보 나섰지만
오픈AI는 챗GPT 출시 2년 반 만에 연간 반복매출(ARR) 100억달러(약 13조7900억원)를 넘겼다. ARR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매출을 측정하는 지표로, 회사가 1년 동안 고객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매출을 뜻한다. 지난 3월 말 기준 챗GPT 주간 활성 사용자 수는 5억명을 돌파하는 등 지난해 기록한 약 50억달러(약 6조8900억원) 적자 개선 기대가 커지는 상황이다.
오픈AI는 늘어나는 수요에 마냥 웃을 수 없다. 사라 프라이어 오픈AI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챗GPT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컴퓨팅 파워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혀, AI 모델을 훈련하고 제품을 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임을 내비쳤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에서 원하는 속도로 최신 AI 인프라를 적기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유출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2년 사이 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예상보다 강한 고객 수요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공급망과 여타 문제로 적기 공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발언을 반복하는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작년 엔비디아 블랙웰 GPU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엔비디아의 레퍼런스 아키텍처 대신 AI 인프라 요소를 모두 자체 아키텍처로 재설계했다. 그 과정에서 오픈AI를 위한 인프라 공급 일정이 미뤄졌다는 후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에 AI 인프라를 거의 몰아주는 상황에서, 제3의 기업 고객에게 AI 인프라를 여유있게 제공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런 가운데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 의존을 줄이고 자체적인 인프라를 확충하려는 시도에 나섰다. ‘스타게이트(Stargate)’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오픈AI,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 공동으로 미국 내에 AI 데이터센터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5000억달러(약 692조6500억원) 규모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목적은 AI 분야에서 미국이 우위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주체는 소프트뱅크고, 운영 주체는 오픈AI다. 오픈AI는 이 프로젝트로 텍사스에 건설되고 있는 오라클의 신규 데이터센터를 활용할 예정이다.
오픈AI는 스타게이트를 해외로도 확장하며 글로벌 인프라 확보에 나서고 있다. 오픈AI는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UAE)와 협력해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짓는 ‘스타게이트 UAE’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UAE에 지을 첫 데이터센터는 2026년 가동 예정이며, 최신 엔비디아 블랙웰 슈퍼칩(GB300) 10만개가 탑재될 계획이다.
그런데 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과 시장 변동성 확대가 주요 원인이다. 투자자들은 데이터센터 공급과잉과 고비용의 GPU 칩 등에 대한 우려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3개월 넘게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조달 계획이나 관련 투자자들과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관세 정책 영향으로 반도체 칩, 냉각 시스템, 서버 랙 등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이 최대 15%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고성능 AI 모델을 공개하면서 인프라 판도가 바뀌기도 했다. GPU 인프라 규모의 무제한 확장을 통해 AI 모델 성능을 추구하는 ‘확장의 법칙’이 딥시크의 등장으로 깨져버린 것이다. 딥시크는 AI 인프라를 최적화하면 엔비디아 최신 블랙웰(GB200) 같은 고성능 GPU 칩에 상당한 자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증명했다. 고성능·고비용의 GPU 칩 없이도 챗GPT에 버금가는 AI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게 확인되면서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에 회의론이 생겼다.
딥시크 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미국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은 잇달아 데이터센터 신규 건립을 추진했다.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기업의 AI 수요 증가 기대감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선제적으로 단행해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관세 우려와 데이터센터 공급이 시장 수요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기술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축소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국 내 데이터센터를 대규모로 확보해 구동한다는 오픈AI의 계획은 예상보다 느려지고 있다.
복잡한 셈법 속 오픈AI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 기술에 대한 접근권이나 매출 배분 등 양보할 생각이 없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이나 메타 등 경쟁사에 맞서 우위를 유지하려면 오픈AI의 기술력과 지적재산권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글과 아마존이 자체적인 파운데이션 모델을 확보한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R&D 조직 내 핵심 AI 팀에서 개발하던 트랜스포머 기반 AI 프로젝트들을 모두 폐기했다. 오픈AI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공고한 파트너십을 맺고, 그렇게 확보한 내부의 우수 인적, 물적 자본을 AI 플랫폼 서비스에 투입하는 것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023년 오픈AI가 구글을 겨냥한 시선 빼앗기 전략을 구사해 ‘세계 최고 AI 회사’란 이미지를 획득했고, 경쟁사에서 오픈AI 대응에 나서는 사이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크로소프트365 코파일럿을 선보이며 기업용 생성형 AI 상용화에서 한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 전략과 사업은 오픈AI 파트너십을 유지한다는 걸 기본 전제로 삼는다. 오픈AI와 관계가 단절되고 독점 사업권을 상실해 경쟁사에서도 오픈AI의 모델을 서비스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생성형 AI 사업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이제 와 LLM과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나서서 ‘프론티어 모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엔 너무 늦었다. 한편으로 오픈AI로 투입되는 투자 규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비용 압박에도 시달리고 있다. 대형 자본 투입을 지속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지, 오픈AI 독점을 포기하고 M&A 같은 새로운 전략을 수립할 지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픈AI도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소프트뱅크가 주도한 400억 달러 규모 투자 조건에 따라 연말까지 영리법인으로 전환해야 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동의를 어떻게든 받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의존도를 줄이고 글로벌 서비스를 단독으로 제공하려면 적기에 데이터센터를 다양한 곳에서 확보해야 한다. 당장 마이크로소프트와 관계를 재조정하는 경우 그간 제공받아온 규모에 필적하는 AI 인프라를 빠르게 얻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신규 모델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학습 인프라를 비용을 주고 운영하게 된다면 만성적인 적자 굴레에 빠질 수 있다.
복잡하게 얽혀버린 상황 속에서 오픈AI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가람 기자> ggchoi@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