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연례 정기국회 격인 양회(兩會·전인대와 전국정협)가 끝났다. 리창 총리는 올해 정부업무보고에서 성장률 5%, 재정 적자율 4% 등의 여러 숫자와 함께 낯선 신조어(新詞)들을 쏟아냈다. 중국 정치의 특기인 ‘양회 신조어’였다.
먼저 구신지능(具身智能)이다. 몸체를 갖춘 지능이란 말로, 영어 ‘임베디드 인텔리전스(Embedded Intelligence)’의 번역이다. 리 총리는 “바이오제조, 양자 과학기술, 구신지능, 6세대 통신 등 미래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관영 매체는 “인공지능(AI)을 로봇 등 물리적 실체에 주입해 인간처럼 인식하고 학습하며 주위 환경에 맞춰 상호작용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로봇 청소기부터 휴머노이드를 아우르는 중국의 차세대 산업을 가리킨 말로 보면 이해가 쉽다.
둘째 가젤기업(瞪羚企業)이다. 정부업무보고는 “전문·정밀·특색·신규성을 띤 중소기업의 발전을 촉진하며 유니콘기업과 가젤기업의 발전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수익성과 직원 숫자가 일정 규모에 도달해 창업 후 ‘죽음의 계곡’을 성공적으로 넘어 고속 성장기에 진입한 기업을 말한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1조4500억원) 이상만 해당하는 유니콘 기업과 비교하면 현실적인 지침을 내세운 셈이다.
셋째 제로(0)베이스 예산을 말하는 영기예산(零基預算)도 처음 언급했다. 과거의 예산항목과 수입 및 지출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로를 기준으로 편성하는 예산을 말한다. 리 총리는 중앙·지방 부문 모두에서 제로베이스 예산을 강조하며 “지출기준, 실적평가 등 적극적인 혁신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연말이면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식의 나랏돈 쓰기 관행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필요한 예산만 편성하겠다는 개혁이지만 경직된 중국 관료사회가 얼마나 소화할지 주목된다.
‘좋은 집(好房子)’이란 신조어도 흥미롭다. 옛날 집은 나쁜 집이라는 생각을 심어 부동산 경제를 살리려는 의도가 읽힌다.
양회 내내 중국 관영 매체들은 신조어를 유독 강조했다. 당정 기관은 신조어 학습에 나섰다. 외신은 조지 오웰의 고전 『1984』 속 신어(Newspeak) 정치에 비유했다. 실제로 낯선 신조어는 프레임을 바꾼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처럼 프레임 바꾸기는 선전술보다 효과가 크다. 지난해 경제광명론을 강조했던 중국이 내수부진과 관세전쟁에 맞서 신조어 전략으로 갈아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