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9명 “한국 ‘마약 청정국’ 아냐···마약 문제 심각”

2025-06-26

국민 10명 중 9명이 마약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 다수는 마약을 범죄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인식하고, 공적인 예산을 투입해 치료와 회복을 지원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26일 경향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 여론조사기관 서던포스트가 공동으로 실시한 ‘마약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사회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마약에 대한 광범위한 경각심이 확인된다. 서던포스트는 6월26일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을 맞아 지난 20~24일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88.2%는 현재 우리 사회의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매우 심각+다소 심각)고 답했다.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 비율은 87.4%에 달했다. 국민 대다수가 마약 문제가 더 이상 특정 계층·특정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니며, 일상에 파고든 사회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청년층의 마약사건 보도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으로는 ‘안타까움’(55%)이 가장 많았고, 그밖에는 불안(21.4%), 분노(18.9%), 무력감(2.5%)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마약 문제가 심각해진 주요 원인으로는 마약을 구하기 쉬워진 접근성을 지목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반인이 마약을 구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58.3%가 ‘쉽다’(다소 쉽다+매우 쉽다)고 답했다. ‘매우 쉽다’는 응답만 따로 봐도 14.0%였다.

응답자들은 SNS, 다크웹 등 온라인 공간을 통한 마약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누구든 마약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인식했다. 예방 정책으로 가장 우선해야 할 과제를 묻는 질문에 ‘SNS, 다크웹 수사 강화’를 고른 응답자가 43.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의료용 마약류 관리 강화(22.2%), 국경 단속 강화(14.6%)가 뒤를 이었다. ‘마약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국가 개입 방식’에 대해서도 보기 중 ‘유통 경로 차단’(43.6%)을 가장 많이 골랐다. ‘처벌 수위 강화’(35.7%)가 2위인 것을 보면, ‘처벌’보다도 유통망 단속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수사기관은 유통환경의 변화로 젊은 청년들이 마약을 쉽게 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5일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4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마약사범 중 20·30대가 전체의 60.8%(1만3998명)을 차지했다. 검찰은 이렇게 마약사범 연령이 낮아진 원인으로 온라인 기반 비대면 거래의 확산을 지목했다.

마약은 치료받아야 할 ‘질병’, 공공예산 써야

마약을 ‘개인의 일탈’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중독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관점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았다. 정부가 마약 중독자 치료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응답도 70%를 넘었다.

‘마약 중독은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라는 시각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92.1%가 ‘동의한다’(매우 동의+대체로 동의)고 답했다. ‘매우 동의한다’는 비율도 59.2%로 높았다. ‘정부가 마약 중독자 치료에 공공 예산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는 비율은 71.6%에 달했다. ‘마약 회복자에게 사회가 기회를 다시 줄 필요가 있다’는 질문에 71.2%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마약은 재범률이 34.5%(2024년 기준)으로 높다. 이때문에 출소 후 지속적인 상담·약물 치료 및 재활 훈련이 필요하다. 중독자들이 함께 거주하며 치료받는 ‘숙박형 회복 공동체’가 있으나, 주로 민간에서 운영되는 데다가 급증하는 중독자들을 따라잡기에는 수가 부족하다. 응답자들의 70.8%는 마약 중독 문제 해결을 위해 ‘숙박형 회복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마약 문제를 정신건강의 관점에서 보고, 예방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마약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정신건강 위기’라는 답이 37.4%로 가장 많았다. ‘사법 시스템의 허점’(22.5%)이나 ‘약물류 관리의 실패’(20.1%)가 그 뒤를 이었다.

‘마약 예방을 학교 내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킬 필요가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77.5%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마약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교육 캠페인 참여(39.3%), 정책 제안(20.4), 지역 회복 모임(7.3%) 등으로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다만 ‘특별한 계획이 없음’이라고 답한 비율도 29.3%로,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것에 비해 개인 차원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약 중독 환자는 보통 우울, 불안, 불면 등 정신건강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치료와 재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중독전문병원이나 권역치료보호기관들을 더 확대하고, 정부가 시설이나 인력을 보강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던포스트 정우성 대표는 “마약 중독자를 경험자를 벌하고 배척해야 한다는 여론보다는 중독자의 재사회화와 예방에 힘써야 한다는 여론이 높게 나타났다”며 “관련 정책도 이러한 방향으로 추진할 때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공의 창

2016년 문을 연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한국사회여론연구소·서던포스트·시그널앤펄스·소상공인연구소·PDI·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0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관이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뜻을 모아 출범시켰다. 정부나 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매달 ‘의뢰자 없는’ 조사와 분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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