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원전 산증인 홍장희 "고리 1호기는 도전의 역사. 퇴장 아쉽다"

2025-07-14

1977년 6월19일. 홍장희(79·사진) 전 한국수력원자력 전무는 이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가 꺼낸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는 작업모를 쓴 채 서로를 바라보며 손뼉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사진 속 장소는 고리 원전 1호기 3층 주 제어실. 한국의 첫 원전이 역사적인 첫 가동을 시작한 날이다.

홍 전 전무는 "원전을 처음 지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90달러에 불과했다. 고리 1호기 공사에 들어간 1428억원은 영국과 미국 등으로부터 차관을 빌려온 것으로 당시 정부 예산의 4배가량이었다"며 "당시 정부가 국가의 명운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고리 1호기는 2017년 영구정지가 될 때까지 40년 동안 총 15만5260GWh(기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했다. 부산·울산·포항 등에 공급되며 한국 산업화의 원동력이 됐다.

1965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입학한 홍 전 전무는 졸업반이던 1969년 2월 한국전력의 원자력 요원 1기로 입사했다. 고리 1호기 건설과 운영에 투입될 전문 인력이었다. 고리 1호기 시운전 요원으로 미국 프레리아일랜드 원전 등에서 1년여간 교육을 받고 고리 1호기 운영 실무자로 시운전과 상업운전을 모두 지켜봤다. 이후 정비관리부장으로 4년, 소장으로 2년 등 총 세 차례 고리 원전에서 근무했다. 고리 1호기를 가장 잘 아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외국에서 온 직원들을 위해 수영장이 딸린 관사를 지어줬는데, 정작 국내 직원들은 허름한 여인숙에 차린 사무실에서 지낼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며 “외국 직원들의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다. 고리 1호기는 한국 원전 도전의 역사였다”고 전했다.

고리 1호기가 지어진 이후 국내에는 26기의 원전이 전력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의 원전 기술도 일취월장했다. 한국형 원전(APR1400)을 개발해 2009년에는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을 수출했다. 올해도 체코 정부와 26조원 규모의 원전 수출 계약을 맺었다.

홍 전 전무는 “2017년 정부에서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와달라는 초청장을 보냈지만 차마 갈 수 없었다”며 “고리 1호기의 시작 버튼을 눌렀던 내가 가동 정지를 축하하는 자리에 가서 박수를 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미국에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96기인데 이 중 37기(38.5%)가 고리 1호기보다 오래됐다. 또한 고리 1호기와 비슷한 시기인 1976~1980년에 전력 생산을 시작한 전 세계 원전 86기 가운데 45기(52.3%)는 여전히 가동 중이다.

홍 전 전무는 “고리 1호기는 터빈, 전기 발생기, 디젤 발전기 등 문제가 되는 핵심 설비 대부분을 최신식으로 교체하면서 갈수록 성능이 좋아지고 있었다”며 "오히려 더 잘 돌아갈 수 있는데, 에너지·원자력을 이념의 대상으로 바라보다 보니 퇴장의 시기가 빨라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고리 1호기의 역사적 가치는 기억해야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특히 인공지능(AI), 전기차 보급 확대 등 전력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현실적 대안은 원전밖에 없다. 홍 전 전무는 "한국은 까다로운 유럽과 미국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지녔다. 국내 원전생태계가 뒷받침돼야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가 생기고 수출도 늘어날 수 있다"며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지키면서 한국 원전의 경쟁력을 더욱 키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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