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돌려야 하는데…수도권 반도체 업체 덮친 차등 전기료

2024-09-25

본사가 비수도권에 있는 국내 대형 에너지업체인 A사 경영진은 요즘 비상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수도권 전기 요금은 더 비싸게, 비수도권 전기요금은 더 싸게 조정하는 식으로 도매 전기 요금을 지역별로 달리 적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에 따른 손실, 사업성 하락, 대응책 등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보유한 비수도권 소재 발전기 4대(2.5GW)에서 생산되는 전기 도매가격이 키로와트시(kWh)당 10원만 떨어져도 회사는 연간 4조원의 손실을 입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의 두 배에 이르는 손실을 보면서 사업을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회사 문 닫겠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오산에서 식품물류회사를 운영하는 이모(43)씨는 수도권 전기요금 인상 소식에 벌써 착잡하다. 이씨는 현재 냉장‧냉동 시설이 갖춰진 물류센터 5619㎡(약 1700평)를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전기요금 포함 월 2억5000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는데, 앞으로 수도권에 적용되는 전기요금이 더 오르면 이 비용도 늘 수밖에 없다. 이씨는 “최근 2년 새 전기요금이 50% 올라서 지난번 계약 때 임대료를 더 올려줬는데 재계약 때 전기 요금 인상을 핑계로 건물주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차등 전기 요금제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가 울상이다. 당장 내년엔 도매 전기에 차등 요금제가 적용되고 2026년엔 소매 시장에도 적용된다. 에너지 업체는 물론이고 전력 의존도가 높은 수도권 소재 제조업체들도 손익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고 있다.

지역별 차등 전기 요금제는 수도권에 밀집된 전력 수요를 비수도권으로 분산하겠다는 취지로 산업통상자원부가 도입을 추진해왔다. 인공지능(AI) 산업이 커지면서 데이터센터가 모여 있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력 소비량은 확 늘었는데 송전망 부족 등으로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영향도 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비수도권에서 만든 전기를 수요가 밀집한 수도권으로 보내려면 송전망을 건설해야 하는데 막대한 비용, 해당 지역 주민 반발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수도권에 있는 에너지 공급 업체들은 당장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국내 전력시장은 한국전력공사가 전력거래소를 통해 모든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구매해 기업·가정 등 소비자에게 되파는 구조다. 이때 한전이 발전소에서 전기를 사 오는 가격이 계통한계가격(전력도매가격)이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전력도매가격이 내년부터는 지역별로 달라진다.

정부는 지역 구분을 수도권·비수도권·제주도로 나누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관련 업체들은 “발전소가 모여 있는 비수도권에서 싸게 전기를 사서 수도권에 비싸게 팔겠다는 의미”라며 “수도권 신규 발전소 유치를 노린다고 하지만, 이미 비수도권에서 발전소를 가동 중인 업체 입장에선 날벼락”이라고 토로했다.

수도권 제조업체들도 노심초사다. 특히 전력 의존도가 높은 업종일수록 타격이 크다. 이미 지난 2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51.3% 올랐다. 2022년 4월 kWh당 101.4원이었던 산업용 평균 전기요금은 현재 153.5원이다. 한국경제인협회 분석에 따르면 지역별 차등 전기 요금제가 시행되면 수도권 제조업체가 부담해야 할 전력 비용 부담은 크다. 수도권 전기 요금이 kWh당 9.5원(소매가격 전가율 20%)만 올라도 7683억원의 비용이, 17원(소매가격 전가율 100%) 오르면 1조3748억원이 는다.

특히 24시간 시설을 가동해야 하는 반도체 등 전자‧통신 업종은 연간 최소 3491억원에서 6248억원의 비용이 늘어날 전망이다(표 참조). 화학(620억~1110억원), 1차금속(362억~648억원), 자동차(362억~586억원) 등도 타격이 크다. 류성원 한경협 산업혁신팀장은 “수도권 제조업의 전력 수요는 지난 3년간 연평균 0.2% 감소했지만, 전력사용 비용은 연평균 21.3% 증가했다”며 “지역별 차등 전기 요금제가 특정 업종에 비용 부담 요소로 작용하지만, 업체의 비수도권 이전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구체적인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현재 논의 중인 방안처럼 수도권‧비수도권‧제주로 나눠서 요금을 차등하면 대전은 전력 자급률이 3.1%임에도 비수도권으로 구분돼 전기 요금이 싸지지만, 전력 자급률이 186.3%인 인천은 수도권으로 분류돼 더 비싼 전기료를 내야 한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취지는 좋지만, 지역 구분에 대한 상세한 기준 마련 없이 제도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확한 기준과 계산 공식을 마련하고 소매 요금까지 합리적으로 배분, 인상해서 반발이 있을 때 정보 공개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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