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례적으로 이곳을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전쟁이 17개월 넘게 장기화되면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멈추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하마스가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된 것이다
시위는 2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안에서도 폭격 피해가 특히 극심한 북부 베이트라히야에서 열렸다. 인도네시아 병원 앞에 모인 주민 수백여명은 파괴된 거리를 행진하며 “우리는 살고 싶다” “하마스 퇴진” “전쟁을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인근 자발리야 난민촌에서도 오랜 기간 굶주림에 시달린 주민 수십여명이 “우리는 먹고 싶다”는 구호를 외치며 전쟁 종식을 촉구했다.
시위를 누가 기획하고 주도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추가적인 시위를 예고하며 동참을 촉구하는 글도 퍼지고 있다.
이번 시위는 이스라엘군이 2개월간의 휴전을 끝내고 최근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재개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한 시위 참석자는 AFP통신에 “사람들은 이제 전쟁에 지쳤다”면서 “하마스가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 이 전쟁을 끝내는 해결책이라면, 왜 하마스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군사력과 통치 능력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고 밝혀 왔다.
이번 시위는 2023년 10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하마스에 반대하는 최대 규모 시위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이 이어지면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선 하마스 지지율이 오히려 전쟁 이전보다 높아지는 등 팔레스타인인들이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장 투쟁이 이스라엘의 점령을 종식시키는 최선이자 최후의 수단이라는 인식도 커졌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며 인명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피란 생활도 반복되면서 이제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속속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전쟁 재개 뒤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는 5만명을 넘어섰다.
2006년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하고 이듬해 가자지구에서 세속주의 성향 정당인 파타를 몰아내며 집권한 이후로, 이곳에서 하마스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2018년 휴먼라이츠워치는 보고서를 통해 하마스가 정치적 반대세력을 체포하는 등 탄압해 왔다고 비판했다.
가자지구에선 2019년에도 ‘비드나 니쉬(우리는 살고 싶다)’라는 구호 아래 하마스를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마스에 의해 무력화됐다. 하마스는 이 시위를 정치적 라이벌인 파타가 조직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