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나, 꽃으로 태어났어”

2025-07-10

한여름이다. 유치원 언덕 작은 둔덕 위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해 있고, 그 곁에는 아이들의 영롱한 웃음소리가 고운 빛에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 옆에, 새까맣게 그을리고 기미 낀 내 얼굴이 겹쳐지며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최근 한 매체에서 유명 여배우가 매일 아침 호텔 조식 뷔페를 즐긴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유 모를 우울감이 마음 한켠을 서서히 짓누르고 있었다. 나 역시 한때는 열심히 공부했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어느새 내 일상은 거울조차 피하고 싶어지는 얼굴과 피로한 다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오늘은 아이들이 텃밭 활동으로 수확한 상추와 고추를 가정으로 보내기 위해, 하나하나 비닐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어제 내린 비 덕분인지 상추에는 우렁이가 여러 마리 붙어 있었고, 그것들이 무릎 위로 툭툭 떨어질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 소스라쳤다. 우렁이와의 한바탕 전쟁이 끝난 뒤, 아이들 교실로 작물을 배달했다.

아이들은 텃밭을 시작하며 어떤 작물을 심을지, 텃밭 이름은 무엇으로 할지 여러 차례 토의하고 투표하며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 그 기억을 되새기며, 아이들은 빵빵하게 묶은 비닐봉투 위에 온갖 그림을 그려 넣었다. 호준이는 오늘 저녁 삼겹살을 기대하며, 귀여운 돼지 그림과 함께 오겹살을 정성껏 그려 넣었다.

우리 유치원 텃밭은 토질이 좋지 않아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지 않으면 금세 시들기 일쑤다.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1박 이상의 모임이나 여행도 꿈꾸기 어렵다. 유치원에서는 꽃도 꽃이지만, 상추도 꽃이고, 아이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관찰하면 잡초조차 꽃이 된다.

바쁜 하루를 마치고 열린도서관을 지나던 중, 무심코 밀쳐진 동화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숨을 고를 겸 펼쳐본 책은 ‘엠마 줄리아니의 『나, 꽃으로 태어났어』였다.’

“따스한 햇살을 받고 알록달록 꽃들과 어우러지면 더욱 아름답게 빛나지요. 난 사람들을 가깝게 이어주고 사랑을 전해주기도 해요. 난 가녀리고 연약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이겨냅니다.”

한 송이의 여린 꽃이 인내와 헌신으로 세상을 돕고 나누며, 기쁨과 감사로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상추나 토끼풀 같은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꽃들인 아이들과 어우러져 매일 아름다운 하루를 가꾸기 위해 애쓰는 내 삶은, 그 동화책 속 꽃과 다르지 않다.

언젠가부터 교육은 점점 사라지고, 서비스만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아이들은 체질이 저마다 달라 모기 한 방에도 벌겋게 부어오르는 일이 다반사다. 오늘도 등원 차량이 안전하게 도착하는지, 점심을 먹은 아이들 중 혹시 체한 아이는 없는지, 또 변비가 심한 아이들이 사용하는 작은 변기는 왜 그렇게 자주 막혀 물이 역류하는지, 매일이 버라이어티하다. 체험활동을 위해 이동하는 버스에서 느끼는 압박감도 이젠 일상이 되었다.

그동안 ‘꽃으로 태어났지만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간다’며 종종 씁쓸함이 앞섰다. 그러나 동화책 한 권이 내 마음속 얼음을, 봄날 눈 녹듯이 부드럽게 녹여주었다.

꽃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너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나는 사람을 키운다. 고단한 하루 끝, 아이들의 웃음이 나를 다시 피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꽃으로 살아간다.

△안장자 수필가는 영남대학교 교육학박사와 영남이공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문학 동시부분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군산하랑유치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며 군산시 아동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꽃 #유치원 #금요수필

기고 gigo@jjan.kr

다른기사보기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