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대통령선거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인공지능(AI) 대선 공약'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장미대선'이라고 칭했던 선거가 'AI 대선'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관련 예산도 50조원부터 200조원까지 각양각색이다. 늘 그랬듯 뚜렷한 재원 마련 계획 없이 일단 '지르고 보자'식이다.
밑그림은 나쁘지 않다. AI 글로벌 톱3 진입, AI 기술 자립 및 육성 같은 큰 목표 아래, 인프라를 채우고 우수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전략 자체는 대단히 옳은 방향이다.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출발해야 하는 차기 정부 특성상 대선 기간부터 AI에 대한 실행 계획을 세우고, 국민의 폭넓은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AI가 한때 유행처럼 반짝하고 끝날 이슈가 아니란 점을 후보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데 필요하니까, 어느 곳이나 붙어있으니 구색 맞추기로 공약에 AI를 집어넣는 것은 그야말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앞으로 당별 최종 후보가 확정돼 본선에 들어가면 후보자들에게 AI 하나만 놓고 끝장 토론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AI는 그만큼, 앞으로 우리 삶 전체를 바꿀 대전환의 핵심기술이다. 글로벌 톱3 AI 강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교육, 노동, 의료 등 우리가 부처(部處)를 둬 다루는 거의 모든 일이 AI로 인해 뒤바뀔 것이다. 심지어 국방까지 AI가 변모시켜 놓을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차기 대통령이 몇백조원을 AI에 투입하는 것으로 약속 받고, 그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선거기간 신박한 AI 공약을 내놓았다고 하더라도 AI가 바꿀 세상에 대한 청사진과 비전에 확신을 갖지 못한 후보라면 그 AI 공약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차기 대통령은 AI 대통령으로 일해야 한다. 당연히 AI가 대통령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당선된 인간 대통령이 AI 협조를 받아 더 좋은 정치, 더 세밀한 정치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몇 개를 사느냐는 공무원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AI가 바꿀 국민의 삶과 변화된 환경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주 그럴듯한 AI 공약을 잘 만들어 내놓는 후보를 뽑을 게 아니라 AI를 지혜롭게 쓸 줄 알고, 그 알맹이를 실천해갈 후보를 뽑아야 할 것이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