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명 넘는 사상자 발생한 차량 돌진 범죄
사우디 출신 영주권자가 저지른 것 밝혀져
2월 총선에서 숄츠 패하고 정권 교체될 듯
독일 총선을 2개월 앞두고 올라프 숄츠 총리가 초대형 악재를 만났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영주권자가 독일 정부의 포용적 이민정책에 불만을 품고 군중을 향한 차량 돌진 범죄를 저질러 20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숄츠가 이끄는 집권당 사회민주당(SPD)이 총선에서 져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21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숄츠는 이날 토요일인에도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州) 마그데부르크로 달려갔다. 인구가 약 24만명인 도시 마그데부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선 지난 20일 BMW 차량 운전자가 갑자기 차량을 전속력으로 몰아 시장에 모인 군중을 덮쳐 9살 어린이를 포함해 5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상자도 200명이 넘는데 그중 40명 이상은 중태라고 한다. 성탄절을 앞두고 관련 상품을 사려는 시민들이 시장에 몰려들어 인명피해가 커졌다.
숄츠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사건 장소에 헌화했다. 이어 시민들을 향해 “법률에 따라 최대한의 공권력으로 범죄에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증오심을 버리고 단결할 것을 촉구하며 “우리는 공존과 공동의 미래를 추구하는 공동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 프랑스 등 우방국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우려를 표하고 연대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숄츠는 “독일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끔찍한 재앙 앞에 홀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는 소식을 듣게 되어 기쁘다”는 말로 고마움을 전했다.
범행 직후 체포된 용의자는 독일에 20년 가까이 거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영주권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反)이슬람 극우주의 성향인 그는 평소 ‘독일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외국 출신 난민에 지나치게 온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취지로 말하며 분노를 드러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숄츠의 전임자로서 재임 기간 포용적인 이민정책을 펼치며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를 향해선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극언까지 퍼부었다고 한다.
평소 정부에 이민 단속을 요구해 온 보수 야당들은 일제히 숄츠 내각을 성토하고 나섰다. 제1야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는 “이런 종류의 범죄에 무관용으로 대응하겠다”며 “우리가 집권하면 불법 이민을 중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도자이자 총리 후보인 앨리스 바이델은 정부를 겨냥해 “이 같은 광기는 대체 언제쯤 멈출 것인가”라고 물었다.
숄츠는 국내에서만 궁지에 몰린 것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사건 발생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관련 기사를 올리며 숄츠를 “무능한 바보”(Incompetent fool)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어 “즉각 사임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SNS 글에선 “독일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AfD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독일 국내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나선 것이다.
오는 2월 총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선 CDU/CSU 연합이 1위를 달리고 있다. 숄츠의 SPD는 AfD한테도 뒤져 3위로 처진 상태다. 2021년 12월 총리로 취임한 숄츠가 3년여 만에 불명예 퇴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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