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사
제2부 ‘5공 청산’과 전두환·노태우 갈등
1회 전두환 해외 망명 보내기 ‘레만호 프로젝트’

여소야대 되자마자 흘러나온 ‘전두환 망명설’

1988년 노태우 집권 두 달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참패하자 야당이 주도하게 된 정치판은 ‘5공 청산’ 국면으로 급발진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김씨들이 속속 당 총재로 돌아왔다. 3김씨는 국회 개원협상에서 ‘5공 특위’ 구성에 합의했다.
이 무렵 나돌기 시작한 소문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해외 망명설’이었다. 찌라시로 번지던 소문은 ‘전두환이 해외 비밀계좌에 거액을 빼돌렸고, 5공 비리 조사를 피해 도피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6월 14일 취재기자들이 전두환의 대변인인 민정기 전 비서관을 만난 자리에서 ‘해외 망명’에 대해 물었다. 그 대답이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였다.
‘해외 망명설’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주장이 엇갈리는 민감 이슈다. 전두환은 자서전에서 “여소야대가 된 만큼 노태우 정권이 야당 주도의 정국에서 나를 보호해줄 힘이 없다는 점도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 순간까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를 해외로 쫓아내려고 공작한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전두환이 ‘공작’이라 확신하는 근거는 1988년 10월 2일 안현태 전 경호실장이 박세직 당시 올림픽조직위원장 소개로 만난 외국인 이야기다. 그 외국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하면 몰래 스위스로 모시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안현태는 박세직의 소개인 만큼 노태우의 메시지라고 확신했다. 그는 극언을 했다.
“각하(전두환)께서도 분명히 거부할 것이다. 나는 메신저니까 각하께 보고는 하겠다. 만에 하나 각하께서 이를 수용한다면 그 자리에서 권총을 쏴 각하도 죽고 나고 죽겠다.”
안현태는 이날 발언에 대해 “평생 각하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고 후회했다. 표현이 ‘불경했다’는 의미다. 그만큼 전두환 측 감정이 격했다.
전두환 측 주장에 따르면, 6공이 분명한 ‘망명 외압’을 넣은 것은 두 차례였다.